by 생각의 변화


미국은 9월에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연수를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7월이나 8월 즈음에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운다. 나 역시 마찬가지, 2012년 8월에 출발해서 다음 해 8월에 오는 게 우리의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10월이 될 때까지도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DS-2019가 도착하지 않았다.


당시의 포트제퍼슨 대학의 비자이민 부서는 이전 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난히 바빴고(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내 비자서류는 점점 더 늦어지고 있었고, 결국 두 달 정도 늦게 DS-2019가 도착했다. 비행기 티켓을 한 번 더 연기해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부랴부랴 비자 인터뷰를 했고, 비자를 받은 후 열흘 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자서류가 두 달 정도 늦어지는 동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에게 여러 가지 애매모호한 증상들이 있어서 검사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었다. 나와 아버지를 진찰한 의사들의 머릿속에 췌장암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암들과 심혈관계 질환들이 떠돌다가 사라졌고 결국 딱 한 가지만 남았다. 모든 혈액검사와 방사선 검사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곳, 그건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이러저러한 걱정들과 여섯 달 넘게 지속된 불면증의 기저에는 우울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뉴욕 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날 아버지는 배웅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올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 견디지 못할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버지는 우리가 뉴욕으로 떠나던 즈음부터 우울증 치료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24일 오후 두 시 즈음에 뉴욕 제이에프케이 공항에 도착했다. 비자이민국의 느린 일처리와 아버지의 우울증, 그리고 우주와 누리의 심한 비행기 멀미를 겪었지만 결국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 나와서 택시에 짐을 싣고 멜빌로 향했다. 멜빌은 뉴욕시 다섯 개 구역 중 하나인 퀸즈에서 동쪽으로 길게 연결된 롱아일랜드에 있는 도시였다. 병원을 소개해 준 선배는 롱아일랜드가 판크레아스(pancreas, 췌장) 모양이라고 설명했는데, 멜빌은 췌장의 체부(body) 중간 정도의 위치였다. 공항에서 멜빌의 우리 집까지 사십 분 정도가 걸렸다. 우주와 누리는 긴 비행시간과 심한 멀미-누리는 공항 입국관리소를 통과하는 중에도 멀미를 했다- 때문에 지쳐서 차가 출발할 때부터 뒷좌석에서 잠들었고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 중에서 그날 집으로 오는 동안에 차창 밖 풍경을 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시끌벅적한 뉴욕의 시내를 벗어나서 멜빌에 가까워질수록 집의 밀도는 줄어들고 건물의 높이는 낮아졌다. 현란한 그래피티는 사라지고 파란 하늘과 단조로운 흰색의 목조 건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 가족이 멜빌에서 일 년 동안 살게 될 아파트는 흰색의 아담한 2층 목조 건물이었다. 비록 도배지 없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무채색의 집이었지만, 아직 조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어둡고 창고 같은 집이었지만, 아무런 가구도 집기도 없는 휑하고 썰렁한 집이었지만, 인터넷도 안 되고 TV도 볼 수 없는 무기능의 집이었지만 나와 아내는 멜빌의 집이 맘에 들었다.

집이 맘에 든 것도 잠깐. 우리 가족은 전혀 몰랐지만 뉴저지에서 아내를 도와주러온 친구가 이틀 후에 허리케인이 뉴욕 주를 관통할 거라고 했다. 30년 만에 오는 엄청난 규모라고 했다. 도착한 다음 날 우주와 누리를 초등학교에 등록시킬 때, 학교 비서가 다음 주에는 태풍 때문에 학교가 며칠 쉴 것 같다고 했다. 그 정도로 엉청난 태풍인가, 하는 걱정을 잠깐 했지만 길어야 사나흘 정도 쉬는 거라 생각하며 주말을 맞게 되었다.


태풍 샌디는 2012년 10월 22일 미국에 상륙했다. 롱아일랜드 지역에 샌디가 도착한 것은 10월 27일이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여러 장을 연결해서 만든 커다란 무릎 담요와 혹시나 해서 가져온 침낭을 덮고 거실 유리창에서 가장 먼 곳에 모여서 잠이 들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 날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들을 일이 없을 것 같은 끔찍한 바람 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공기를 휘익하며 가르는 소리, 나뭇가지가 우두둑 꺾이는 소리, 거리에 버려진 깡통이 어딘가에 세게 부딪치는 소리, 깡통이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소리,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 한꺼번에 날아가고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밤새 곧 깨져버릴 것처럼 유리창이 심하게 덜컹거렸다.


무섭고도 소란스러웠던 밤이 지나고 거짓말처럼 고요한 아침이 왔다. 다음 날 아침에 본 우리 집 주변의 풍경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었다. 천년만년 그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을 것만 같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공습을 맞은 마을의 부상자들처럼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담장을 무너뜨리고 옆집으로 넘어간 나무도 있었고, 뿌리가 뽑힌 채 쓰러져 집 건물에 기대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집 주변에는 쓰러진 큰 나무도 다친 사람도 없었다.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 주에 상륙한 후 이 주 정도의 기간 동안 우리 가족에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가족 넷이 하루 종일 같이 지내게 된 것이다. 도착 당시에 우리 가족을 도와주던 아내의 친구와 중개인은 샌디 때문에 올 수 없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우리가 말을 붙일 만한 한국인이나 살가운 이웃도 없었다. 학교가 태풍 샌디로 휴교 중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우리가 장보는 걸 따라 다녔다. 자운대에서 보낸 군의관 시절, 나와 아내가 우주와 누리 두 아기의 부모였을 때처럼 우리 가족은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었다. 십 년 만에 다시 우리 가족은 가족(家族)의 한자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집(家)’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族)’이 된 것이다.


(1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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