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률
한국 프로야구 정규리그 1위 팀의 승률은 대체로 6할 정도이다. 2009년 기아타이거즈의 승률은 0.609였고, 2010년 SK와이번즈는 0.639, 2011년 삼성라이온스는 0.611이었다. 한국시리즈 5연패를 노렸던 삼성라이온즈의 승률도 0.624였다. 열 번을 싸워서 여섯 번 정도를 꾸준히 이기면 1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야구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역시 대부분의 디비전에서 6할 승률이면 지구 1위가 가능하다. 6할의 승률, 여섯 번의 승리와 네 번의 패배. 야구가 다른 종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섯 번의 승리만큼이나 네 번의 패배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꾸준히 여섯 번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네 번을 패할 수 있어야 한다.
궤변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위닝시리즈를 생각해보라. 한국 프로야구 감독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시리즈 전적은 스윕(전승)이 아니라 위닝시리즈(2승 1패)이다. 왜 감독들은 스윕을 원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근사치의 답은 연승 뒤에는 항상 연패의 그림자가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연승 뒤에는 그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연패가 기다리고 있다. 이건 괜한 터부가 아니라 나름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연승기간 동안 팀에는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이기는 경기에 투입되는 불펜의 필승조가 자주 나오게 되고, 박빙의 승부가 잦아지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만 나오는 마무리 투수도 평소보다 자주 나오게 된다. 투수뿐만이 아니다. 적당한 시기에 백업 요원들과 교체되어야 하는 주전 타자들도 마지막까지 뛰어야 하는 일이 잦아지고, 연승 기간 중에 연장전이라도 몇 번 끼어 있다면 야수들이 겪는 체력적인 과부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그래서 연승의 끝은 정상 승률로의 복귀가 아니라 연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결국 위닝시리즈란 ‘꾸준한 2승을 위해서 꾸준한 1패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연승 뒤에는 연패가 기다리고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풀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야구는 인생과 많이 닮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이 말한 것처럼 잘 나간다고 생각될 때 위기는 이미 뒤통수 바로 뒤에 와있는 법이다.
2005년 삼 년간의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2005년 5월에 찍은 사진 속에는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웃고 있는 두 아들이 있었다. 당시 우주는 네 살이었고 누리는 두 살이었다. 대전에서는 건강하게 지내던 우주는 서울에 와서 유아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프기 시작했고 우주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누리도 같이 아팠다. 둘은 거의 꼬박 두 달 동안을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병치레로 지쳐있던 아내가 아마도 우리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운대에서 우주와 누리를 낳고 기르던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아내의 말은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감사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암시이거나 저주이기도 했다. 그 시기가 행복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우주와 누리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우주와 누리가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걱정과 불만은 늘었고 행복한 일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위기는 불만 많고 소모적이었던 E병원 시절에 오지 않았고, ‘나름’ 잘 나가던 시기에 왔다. 사실 위기는 이미 그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는 위기의 징후들로 넘쳤는데 나만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른 채 희생당하는 공포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병원 일을 하면서 당직도 서야 하고, 문학 강의도 해야 하니 내겐 늘 시간이 모자랐다. 특히 강의 원고를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 세상에 어떤 인간도 없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있는 시간을 쪼개 쓰는 방법 뿐. 내가 생각해낸 해결 방법은 외래를 보거나 당직을 서는 중에 틈틈이 강의원고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환자를 보는 일에 조금씩 소홀해졌고, 병원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서 내 이름이 회자되는 일이 잦아졌다. 주변의 사람들이 환자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라는 충고를 했다. 그 충고가 때로는 고깝기도, 때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에 내가 퇴근해서 집에서 하는 첫 번째 일은 프로야구 중계를 보는 것이었다. 집에서 야구 중계를 보다가 피트니스 클럽에 운동을 하러갔고, 운동을 끝내고 집에 오면 열 시가 넘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아내의 몫이 됐고 나는 은근슬쩍 빠졌다. 아내 역시도 퇴근하고 오면 피곤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짜증을 낼 때가 많았다.
우주는 성실하지 않았고 정해준 숙제를 하지 않았다. 누리는 한자리에 오래 앉아서 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아내가 일을 마치고 와서 집에 있는 동안 하는 일의 대부분은 아이들을 혼내고 야단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나는 우주가 더 이상 귀엽지 않았다. 서울로 이사 온 뒤로 어느 순간부터 우주를 더 이상 귀여운 큰 아들로 생각하지 않았다. 떼쓰고 제멋대로이고 반항적이고 욕심 많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인간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내 기억엔 그 당시 몇 년 동안 우주를 안아 주거나 살갑게 대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우주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나도 너를 그냥 놔둘 테니 너도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둬라. 우주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딘가를 쏘다니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우주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모른 척했다. 아들과 말하는 것이 싫었다. 이제 겨우 열 살인 아들과 얘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TV에서나 봤던 문제 많고 이기적인 아빠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누리는 대부분의 발달이 느렸다. 걷거나 서는 것도 늦었고 대소변을 가리는 것도, 말을 배우는 것도 늦었다. 발달이 느린 것도 문제였지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일 대 일로 운동을 배우는 것도 어려웠고, 유아 축구클럽과 같은 곳에서 하는 단체 운동경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선생님도 제멋대로 구는 누리 때문에 난감해 했다. 다른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놀고 있으면 누리는 구석에서 딴 짓을 하고 있었다. 걱정은 됐지만 운동을 싫어하기 때문이거나 일시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누리가 말을 배우는 것이 느렸지만 어느 정도 좋아진 것처럼 다른 문제들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천천히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누리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누리에 대해서 심각하다고 느꼈던 때는 유치원 졸업식 재롱잔치에서였다. 누리는 짧은 공연시간 중에도 거의 집중을 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공연하는 동안 혼자서 무대 한 켠에 앉아 있기도 했고, 공연을 하고 있는 중에도 가끔씩 정해진 것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이니까, 라고 자위했지만 마음 한 켠은 여전히 불안했다. 왜 유독 누리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걸까? 단지 발달이 조금 느리기만 한 걸까?
유치원 선생님들은 누리를 귀여워했고 누리의 느린 발달이 특별히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2011년 누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담임 선생님은 누리가 수업 중에 돌아다니기 때문에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ADHD였다. 두 곳의 병원에서 모두 그렇게 진단했다. 두 선생님 모두 누리가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고, 놀이치료나 다른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2011년 여름 즈음의 일이었다.
누리의 느린 발달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는 정도가 아니라 병 때문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도, 그것이 ADHD라는 의과대학생 시절 정신과나 소아과 수업 때 들었던 병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모든 문제가 금방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두 해 정도 약을 먹고 나면 누리도 다른 아이들처럼 수업시간에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듣고, 점심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 오는 날이 금방 올 거라 믿었다.
현실은 내 희망 사항과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약을 먹은 다음 날부터 누리는 갑자기 얌전해졌다. 누리는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조울증의 사이클을 겪는 아이처럼 보였다. 하루 종일 누리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약 기운이 돌고 있을 때의 누리와 그렇지 않을 때의 누리. 둘은 완전히 달랐다. 마치 누리의 얼굴을 한 두 명의 다른 아이가 번갈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낮에는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약간 풀이 죽어 있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누리가 학교와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면 어디선가 장난기 가득하고 해맑은 표정의, 깔깔거리고 시끄러운 누리가 거실 소파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두 명의 누리 모두 사랑스러웠지만, 두 명의 누리 모두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