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볼

by 생각의 변화

캐치볼


연수 초기에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우주와 놀아주는 것이었다. 네 명의 가족 중에서 집에 있는 게 불만인 유일한 사람이 우주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저녁 늦게까지 쏘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는 패턴에 익숙했던 우주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멜빌이, 그리고 자기 혼자서는 껌 한 통도 살 수 없는 미국 생활이 너무나 심심했다. 더군다나 학교도 가지 않았으니 그 심심함이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우주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았다. 집안에서는 테니스 공과 위플볼로 야구를 할 수 있었고, 관리 사무소 건물 내에 있는 스쿼시 코트에서는 테니스 채와 공으로 엉성한 스쿼시를 할 수 있었고, 실내 농구 코트에서는 일대일 농구를 할 수 있었고, 수영장 잔디밭에 마련된 조그만 그린에서는 미니 골프를 할 수 있었다. 규칙도 없고,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하는 엉성한 게임이었지만, 심지어 우주는 게임보다 농구 코트 근처에서 파는 자판기 콜라와 돌아오는 길에 들르곤 했던 편의점에서 파는 주전부리들에 훨씬 관심이 더 많았지만, 우주와 나는 우주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우리는 배낭여행을 떠난 새내기들처럼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같이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디를 가든 우주를 데리고 다녀야 했고, 우주 역시도 아빠 없이 혼자서는 미국에서 돌아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 둘은 미우나 고우나 하루 종일 같이 붙어 다녀야 했다, 자그마치 2주 동안!


2주가 지난 후 우주와 누리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나와 아내는 가구와 세간들을 보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가 동네 주변을 한 번도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뉴욕과 서울 사이에 존재하는 열세 시간이라는 시차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점심이 되면 아내와 나는 졸리기 시작했다. 2주 정도가 지난 후에는 나아졌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한 달 정도 됐을 때까지도 점심 즈음이 되면 피곤해졌다. 게다가 그 시기에 멜빌은 네 시만 돼도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가 환한 낮에 동네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온 지 한 달이 되던 즈음에야 아내와 나는 걸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우리 집 아발론 코트 근처에 있는 비슷비슷하게 공장처럼 생긴 회백색의 네모난 단층 건물들이 뭐하는 곳인지 궁금해했다. 산책 삼아 주변을 걷던 중에 그 건물 중 하나의 입구 유리창에 ‘SPORTS’라는 영문이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PROSPECT SPORTS. 뭐하는 곳일까. 그게 어떤 운동이든지 간에 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삭막한 건물이었다. 직사각형의 벽으로 둘러싸인,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하얀 단층의 건물. 가장 가능성이 많은 것은 운동기구를 만드는 공장이거나, 실제로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땀 한 땀 바늘로 꿰매어 글러브나 야구공을 만들어 내는 가내 수공업 공장 같은 곳. 둘 다 아니라면 트레드밀을 포함한 운동 기계들이 잔뜩 쌓여 있는 창고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공장이나 창고나 그게 아파트 단지 바로 근처에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 건물 안은 어두컴컴했다. 공간을 나눈 녹색의 그물들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치렁치렁 내려와 있었고 바닥에는 야구 배트, 글러브, 고무 배팅 티, 야구공 박스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벽면에는 현직 메이저 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붉은 유니폼을 입은 야구 선수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뉴저지 출신의 마이클 트라웃이었다.)

둘러 보고 있을 때 입구에 있는 데스크 안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사십 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여자 직원이 나왔다. 아내가 물어보니 야구 개인 레슨을 해주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우주가 좋아하겠다, 아내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이 우리 집에서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학교에서 돌아온 우주에게 얘기했더니 주저없이 레슨을 받겠다고 했다.


우주가 어렸을 때는 학교 운동장이나 한강 공원에서 캐치볼을 하곤 했다. 우주는 엄마와 캐치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주가 보기에는 엄마가 공을 제대로 못 받는데다가 던지는 것도 왠지 좀 엉성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굉장히 엉성했다. 심지어 아내는 우주가 던진 공을 받는 것도 무서워했다. 우주와 몇 번 캐치볼을 해보진 않았지만 우주는 처음 공을 던지는 것을 배울 때부터 언더핸드가 아닌 오버핸드로 던졌다. 어른들이 던지는 것처럼 던질 거야. 우주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도 그랬다. 하도 고집을 부려서 처음부터 보조바퀴가 없는 자전거를 탔는데 몇 번 넘어지더니 금세 능숙하게 타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아내는 우주를 신기해했다.

우주가 일곱 살이었을 때, 캐치볼을 하고 있는데 우주 친구가 와서 아는 척을 했다. 저 나이에 캐치볼이 가능하네요. 같이 온 우주 친구의 아빠는 우주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다. 우주와 캐치볼을 한 건 아마도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이후에는 우주가 테니스를 친다는 건 알았지만 야구를 한다는 건 잘 몰랐다. 당연히 야구하는 걸 본 적도 없었고.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은 골프나 테니스 레슨을 받는다면 모를까 야구 레슨을 받는다고 하면 좀 의아해할 것 같다. 야구? 그것도 레슨을 받아야 하나. 야구 같은 거야 애들끼리 그냥 대충 하면서 배우는 거지. 사실 나 역시도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주에게 야구 레슨을 받도록 한 것은 친구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야구 레슨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지낸 나에게는 낯선 것이었지만 미국, 적어도 롱아일랜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처음 프로스펙트 스포츠에 우주를 데리고 갔을 때만해도 태풍 샌디의 여파로 한산했던 실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야구가 시작되는 4월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북적거렸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어른들까지, 야구 레슨을 받는 사람들은 연령도 다양했고 수준도 다양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잘 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저 그런 실력이거나 완전 초짜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주는 피칭과 타격에 대한 레슨을 두 명의 인스트럭터로부터 받았다. 피칭을 가르쳐 주는 인스트럭터는 마이너리그 투수 경력이 있는 케니였고, 타격을 가르쳐 주는 인스트럭터는 아마추어 선수 출신의 피제이였다. 케니는 큰 키와 우람한 체격을 지녔지만 털털한 인상이었다. 레슨을 시작할 때 악수를 하면서 같이 서보면 나와 머리가 하나 이상이 차이가 나는 큰 키였다. 아마도 190센티미터 가까이 될 것 같았다. 피제이는 17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키에 다부진 몸집을 지닌 부드러운 인상의 청년이었다. 운동선수라기보다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쌀집 청년에 훨씬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인스트럭터들은 경력에 따라서 레슨비에 차등이 있다.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 아마추어 선수 경력, 일반 지도자 자격이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졌다. 피제이는 메이저나 마이너리그 경력이 없음에도 레슨 일정이 꽉 잡혀 있었다. 처음 우주를 등록시키던 날, 일정을 잡아주던 여자 직원은 피제이의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피제이로 해야 할지 다른 인스트럭터로 해야 할지를 망설이자 엄지를 척 올리며 피제이를 추천했다, He’s excellent.

미국에서의 야구 레슨은 삼십 분 동안을 꽉 채워서 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고, 별도의 준비운동도 하지 않는다. 단거리 피칭이나 가벼운 스윙으로 준비운동을 대신한다. 첫날 지켜본 바로는 우주의 타격은 엉성했다. 공을 쫓아다니느라 바쁘고, 임팩트 때 상체가 앞으로 쏠리고, 공을 끝까지 보지 않고, 헤드업이 일찍 되고 등등. 피제이는 우주의 타격 폼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지적하고 교정해 주었다. 우주의 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좋아졌다. 스윙 스피드와 파워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공을 맞추는 능력이 좋아지고 있었다. 피제이도 레슨 받은 지 석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우주의 발전을 칭찬해 주었다. 내가 보기에도 타석에서 공을 기다리는 자세와 타격할 때 자세가 모두 안정적으로 보였다. 우주가 피제이가 하는 설명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것 같았고 연습 시간동안 피제이의 지도에 집중하면서 잘못된 점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He has a good stuff, 첫 레슨이 끝나고 케니가 내게 말했다. 케니는 우주를 맘에 들어 했다. 레슨 중에 우주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으면 내게 다시 얘기해서 우주가 이해했는지를 확인했다. 내가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그가 한 말의 요점은 우주가 공을 던지는 기본적인 요령을 잘 알고 있고, 투구 폼이 매우 좋다는 것이었다. 레슨 첫날에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으레 하는 칭찬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여섯 달 동안 프로스펙트 스포츠에서 내가 다른 아이들의 피칭을 보면서 느낀 건 우주만큼 던지는 아이들이 흔하지는 않다는 거였다. 우주는 팔 스윙이 간결하고 매끄러웠고, 하체가 안정적이어서 제구가 잘 되는 편이었고, 체중이동을 하면서 공에 힘을 실을 줄 알았다.


한 달 정도 됐을 때 우주가 타격 레슨을 받고 있는데 케니가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 아는 척을 했다. 우주가 타격 레슨도 받고 있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한동안 우주가 스윙하는 걸 유심히 지켜봤다. 레슨 중에 잠깐 틈이 생겼을 때 피제이에게 훌륭한 선수가 될 아이니까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부탁이 진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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