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이듬해 3월이 될 때까지도 우리 가족은 멜빌 주변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멜빌에 도착한 초기에 맨해튼에 있는 자연사박물관과 센트럴 파크를 다녀왔고, 뮤지컬을 보기 위하여 두 차례 브로드웨이를 방문한 것이 그 당시까지 우리가 했던 바깥나들이의 전부였다. 우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을 스케치북에 붙여서 학교 과제로 제출했는데 우주 반의 아이들이 우주의 사진을 보면서 굉장히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역설적이게도 우주와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자연사 박물관을 가본 아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해운대 근처에 살고 있는 부산 토박이 후배는 해운대에 발을 담근 적조차 없다고 했다. 하긴 서울에 사는 사람 중에서 경복궁이나 창경궁, 남산타워를 모두 가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같은 맥락에서 롱아일랜드에서 사는 이들이 굳이 맨해튼 시내의 교통 혼잡을 뚫고 자연사박물관을 가려고 하지 않는 게 이해가 됐다.
우리 가족이 넉 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여행을 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가족 네 명 모두가 차를 타고 멀리 그리고 오래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비록 미국의 도로가 한국에 비해서 평탄하기 때문에 차멀미를 덜하긴 했지만 오래 타면 결국 멀미를 했다. 그래서 두 아이 모두 차를 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누리는 워낙에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우주는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차를 타고 멀리 가는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겨울이 끝나가면서 두 번의 폭설-두 번째 폭설이 내린 다음 날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스톰프(Stomp)’를 보러 맨해튼에 갈 예정이었다-로 쌓였던 눈은 점점 녹아서 사라져버렸고, 낮은 조금씩 길어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미 어둑어둑해져서 집 안에서 공을 던지며 놀았던 우주는 봄이 되고 낮이 길어지면서 레슨이 없는 날은 밖에서 캐치볼을 하거나 나와 함께 미니야구를 했다. 야구를 할 만한 장소는 많았다. 사실 너무 많았다. 집에서 차를 타고 오 분 거리 내에 정식 야구가 가능한 구장이 서너 군데 있었다.
우주와 내가 가장 자주 가던 곳은 멜빌 도서관 맞은편에 있던 선컴 초등학교 옆의 선컴 파크(Sunquam park)였다. 선컴 파크에는 두 개의 야구장과 넓은 풀밭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둘 모두 야구장이 아닌 소프트 볼 구장이었다. 둘을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평지보다 불룩하게 올라간 투수 마운드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낮이 길어지면서 우주와 내가 거르지 않는 일과 중하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 선컴 파크에서 야구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우주는 게임을 하지 않고 야구 레슨만을 받는 것에 조금씩 지루해하고 있었다. 리틀야구 리그가 시작되는 4월이 가까워지면서 선컴 파크의 야구장은 점점 더 야구장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잔디가 있는 외야는 규칙적으로 풀을 깎아서 미용실에서 머리를 막 깎고 나온 사람의 머리처럼 단정해지고 있었고, 겨우내 얼어 있던 그라운드의 흙은 마르고 먼지가 날리기 시작했다.
3월 30일 오전 9시에 선컴 파크에서 첫 연습을 했다. 우주는 내셔널즈의 선수가 됐다. 하프할로우힐 리틀리그는 같은 나이의 아이들끼리 묶어서 경기를 했는데 내셔널즈는 열 살 아이들이 하는 리그(Minor 10)에 속한 여덟 개 팀 중 하나였다.
우리 팀은 열두 명이었고 감독은 피카렐라였다. 연습을 위해서 모인 아이들의 수준은 고만고만했다. 공을 던지는 것도 치는 것도 모두 평범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굉장히 평범했다. 아이들의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이들 중에는 아주 작아서 누리 정도 되는 체격의 아이도 있었다. 우주는 팀 내에서 체격이 큰 편에 속했다.
피카렐라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인상과 작은 키 때문에 귀엽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나보다 네댓 살 정도는 많을 것 같았는데 그건 아들인 마이클 위로 두 명의 쌍둥이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는 야구 연습을 할 때 한국에서 산 빨간색 타이거즈 야구 모자를 자주 썼는데, 피카렐라가 처음 만났을 때 우주에게 어느 팀 모자냐고 물었다. 우주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 했기 때문에 내가 대신 한국의 기아타이거즈라는 팀의 모자라고 대답해주었다.
피카렐라는 우주에게 뉴욕 메츠라는 팀을 아냐고 물었고, 자신이 뉴욕 메츠의 팬이라면서 우주도 메츠 팬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인 마이클이 뉴욕 메츠의 간판 내야수인 데이빗 라이트의 이름이 새겨진 야구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내게 우주가 한국에서 어떤 포지션을 주로 했는지 물었다. 사실 우주가 어떤 포지션을 했는지 전혀 몰랐지만 미국에 와서 피칭 연습을 다섯 달 가까이 한 걸 생각하면서 투수와 1루수를 보았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피카렐라는 내가 우물쭈물 말하는 게 영어로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일 거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연습이 시작됐다. 초반에는 코치-아이들의 아빠들 중 자원자들이 맡았다-들이 가볍게 펑고를 해주면서 내야 땅볼과 외야 플라이에 대한 수비연습을 시켰다. 피카렐라는 아이들에게 공을 던지는 걸 보면서 투수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물색했고, 코치들에게 45피트를 던질 수 있는 아이들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예전에는 미국 사람들은 왜 아직도 미터가 아니라 불편하게 피트나 야드를 사용하는 지 궁금했는데, 이 날 그 의문이 조금 풀렸다. 열 살 아이들의 야구 경기에서 투구판과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45피트, 그러니까 13.716미터이다. 이걸 어떻게 잴까. 우주의 공을 받아 줄 코치가 투구거리가 얼마인지를 피카렐라 감독에게 확인한 후 자신의 발로 마흔 다섯 발자국으로 거리를 맞췄다. ‘13.716’미터를 재는 것은 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지만 피트는 대략 성인 남자의 발사이즈(약 30센티미터)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측정 도구가 없는 곳에서도 쉽게 측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코치가 우주의 공을 서너 개 받은 후 피카렐라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는 의미 같았다.
문제는 타격. 피카렐라는 아이들에게 공을 열 개 정도 던져주면서 배팅을 시켰는데 불행하게도 우주는 단 하나의 공도 맞추지 못했다. 피카렐라는 우주가 안 돼 보였는지 몇 개의 공을 더 던져 주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주는 단 하나의 공도 맞추지 못했다. 단 하나의 공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타격 레슨을 할 때 던져 주는 공보다도 훨씬 느린 공인데 못 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단 하나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피카렐라가 던져주다가 손을 바꿔서 내가 던져도 줘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주의 배트에는 단 하나의 공도 맞지 않았다. 또 다시, 단 하나의 공도! 우주는 여러 코치들의 위로를 받으며 그날의 연습을 마쳤다. 타격 연습을 마치고 나서는 우주는 잠깐 우울해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주는 나쁜 기억을 빨리 잊는 편이었고, 야구를 할 수 있는 날들은 앞으로 무지하게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우주가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연습할 때 하나도 못 쳐서 자신이 너무 하위 타순에 배치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정작 많이 상심했던 사람은 우주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혹시 우주가 실전에 들어가면 지나치게 긴장하는 성격인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