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히터

by 생각의 변화

클러치히터


첫 연습이 있었던 3월30일과 메츠와의 첫 경기가 있던 4월 13일 사이에 우리 팀은 한 차례 더 모여서 연습을 했다. 우주의 타격은 처음보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공을 하나도 못 맞추지는 않았다는 것. 물론 레슨을 받을 때는 여전히 맹타를 휘둘렀다.

내셔널즈라는 이름은 메이저리그 팀 중에 하나인 워싱턴 내셔널즈에서 온 것이고 나머지 일곱 개 팀- 메츠(Mets), 애슬레틱스(Athletics), 다이아몬드백스(Diamond backs), 자이언츠(Giants), 타이거즈(Tigers), 양키즈(Yankees), 말린즈(Marlins)-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셔널즈의 유니폼은 빨간 모자와 상의 그리고 회색 바지와 빨간 양말로 이루어 졌다. 야구 경기는 대개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했다. 주중에는 부모가 퇴근을 해야지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으므로 저녁경기를 하였고, 주말 경기는-주로 토요일인 경우가 많았다. 유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일요일에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일정에 따라서 낮에 경기를 하기도 했다.


하프할로우힐 리틀 리그와 내 어린 시절 야구의 차이점 중 하나는 심판이었다. 모든 경기에는 주심과 1루심이 배치됐다. 프로야구 심판처럼, 아니 그들보다 훨씬 더 자주 이들도 오심을 했다. 하지만 혹 오심을 하더라도 모든 선수와 코치들은 결국 심판의 판정을 따랐다. 물론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또 하나는 성문화된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리그 웹사이트에는 여러 가지 규칙들이 문서로 올라 와 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꼽아보면, 야구 경기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은 자신의 배트를 등록하고 공인 배트라는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리틀리그 사무실에서 직원이 배트를 확인한 후에 스티커를 붙여 주는데, 이런 규정이 있는 이유는 반발력이 너무 좋은 배트를 사용하면 투수가 타자의 강한 타구에 맞아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이다.

리그에 속한 대부분의 열 살 선수들은 그렇지 않지만 타격에 재능이 있는 몇몇 아이들은 충분히 투수를 다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리틀리그 사무실의 직원들은 시중에서 파는 배트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만약 목록에 없는 배트의 경우에는 배트의 재원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정보가 있는 웹사이트에서 확인하거나 배트에 표시되어 있는 재질을 확인한 후에 스티커를 붙여 주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리틀 야구 경기를 몇 번 했지만 이런 규정을 본 적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기 소요시간에 대한 규정이 있다. 경기는 6회까지이고 플레이오프가 아닌 정규 경기는 2시간 30분이 지나면 새로운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이 3회이건 4회이건 5회이건 2시간 30분이 넘으면 경기는 양 팀의 공격을 마치는 순간 끝난다. 그래서 봄 리그 동안 6회까지 모두 마친 경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4월 13일 저녁 7시 30분 옷세고 파크(Otsego park, 미국 사람들은 ‘앗씨고’ 파크라고 발음했다)에서 우리 팀은 메츠와 첫 경기를 가졌다. 옷세고 파크 안에는 크기가 다른 열다섯 개의 경기장이 있었다. 옷세고 파크는 다양한 크기의 경기장이 있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들이 여러 종류의 경기(야구, 소프트 볼, 티볼)를 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두 가지 장점이 더 있었다. 첫 번째는 조명 시설이 있기 때문에 야간경기가 가능했다. 낮의 길이가 짧은 봄과 가을에 이곳에서 경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그라운드의 흙이 배수가 잘 돼서 어느 정도 비가 와도 경기를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드디어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주는 6번 타순이었고 3회까지 우익수, 3루수를 보았다. 우리 팀의 선발투수는 벤자민 웹. 벤은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타격을 할 때 보면 스윙 스피드도 좋고 파워도 좋았다. 연습할 때 투구 하는 걸 본 적은 없었는데 실제 경기를 할 때 보니 공을 자신 있게 잘 던졌다. 벤은 쓰리쿼터로 공을 던졌는데 공의 스피드도 괜찮고 제구도 안정적이었다. 우리 팀의 타순은 피카렐라의 아들인 마이클이 1번 타순에 들어가 있었고, 2번 브렌트, 이후의 클린업 트리오는 벤, 존, 블래이크, 그리고 우주는 6번이었다. 우주는 자신의 타순에 아주 만족했다.

리틀야구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의 타순을 정해주는 것이다. 수비위치는 배터리를 제외하고는 이닝마다 변동이 가능했지만 타순은 한 번 정해지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비는 아홉 명만 해야 하지만 타자 라인업에는 그날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더라도 앞 쪽 타순에 배치된 타자들은 타석에 설 기회가 더 자주 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야구를 하는 모든 아이들의 로망은 중심타선을 치면서 선발 투수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감독이 원하는 득점 패턴은, 1번 마이클이나 2번 브렌트가 진루를 한 후에 도루로 2루를 훔치고- 포수 미트에 공이 들어간 후에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 3번 벤과 4번 존이 타점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1, 2번이 진루가 안 되고 3. 4번이 루상에 나가 있는 경우에 해결 능력이 있는 타자를 5, 6번에 배치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팀이나 두 명 정도는 클러치 능력을 보유한 타자들이 있지만 서너 명씩 있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 팀 역시 마찬가지, 클러치 능력이 있는 벤과 존 앞에 주자들이 없으면 점수가 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더군다나 벤과 존은 다른 팀의 감독들도 둘의 타격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승부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결국 대량득점의 열쇠는 5, 6번 타자의 클러치 능력에 있었다.


1회가 피카렐라의 생각대로 흘러갔다. 1번 마이클이 볼넷으로 진루하고 2루 도루. 브렌트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되었지만 그 사이에 마이클은 3루로 진루. 3번 벤은 볼넷으로 걸어 나가고, 4번 존은 적시타로 마이클을 불러 들였다. 이 다음이 중요했다. 하지만 5번 블레이크는 삼진.

투 아웃. 2, 3루. 우주가 타석에 들어섰다. 흐름을 봐서는 두 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벤이 아무리 구위가 좋아도 한 점차로 앞서가는 것은 불안했고 하위타선으로 연결되는 2, 3회에는 점수가 날 가능성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상대 투수는 사이드암이었고 스피드가 좋았지만 못 칠 정도의 공은 아니었다. 투수 입장에서도 우주를 피해가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치기 좋은 공을 던져서 헛스윙이나 범타를 유도하는 게 바람직했다.

우주는 기다리지 않고 초구에 배트를 휘둘렀다. 우주가 친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아주 잘 맞은 공은 아니었지만 투 아웃이었기 때문에 짧은 안타임에도 벤과 존 모두 들어올 수 있었다. 3:0 벤은 3회까지 두 점으로 잘 막았고, 우리 팀은 3회에 벤의 그라운드 홈런으로 두 점을 더 보탰다. 5:2.


3회가 끝나고 피카렐라가 덕아웃 옆에서 경기를 보던 내게 다가왔다. 우주를 마운드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우주에게 전했더니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4회가 시작되고 우주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다. 잘 던져야 할 텐데. 내 마음도 조마조마해졌다. 우주는 올라와서 평소 레슨 받을 때 던지던 힘의 60퍼센트 정도로 연습투구를 했다. 아마도 상대팀의 타격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타를 맞아서 점수를 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 투구 때도 비슷한 힘으로 공을 던졌다. 볼넷과 안타로 두 명의 주자를 내보냈지만 이후에 수비들이 타구를 잘 처리해줘서 무실점으로 마쳤다. 5회에는 별다른 위기 없이 삼자 범퇴시켰다. 마지막 타구는 까다로운 투수 앞 땅볼이었는데 허리를 숙여 백핸드로 잡아서 천천히 1루에 송구했다. 쓰리 아웃. 5:2. 2시간 30분 룰에 의해서 경기는 5회에 끝났다.

닉의 아빠가 백핸드로 공을 잡는 장면을 흉내 내며 우주가 처음인데도 긴장하지 않고 땅볼을 잘 처리했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아이가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게 되면 아빠도 긴장되는데 내게 괜찮았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았다고 대답했다, 실은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했지만.


피카렐라는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을 모아놓고 그날 경기의 총평을 했다. 피카렐라는 우주를 그 날의 선수로 뽑았다. 상품은 경기에 사용했던 야구공. 물론 우주도 잘했지만 그날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건 벤이었다. 벤은 선발투수로서 잘 던졌고 타격에서도 뛰어났다. 벤의 홈런으로 얻은 두 점 때문에 우주는 좀 더 편안하게 던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날의 선수로 우주를 뽑은 것은, 어쩌면 6번 타순으로 배정한 것 마저도, 바다 건너 낯선 나라에서 온 열 살짜리 소년에 대한 피카렐라의 배려였을 것이다.

경기를 마치고 집이 아닌 허 집사님 댁으로 향했다. 6월에 있을 교회 합창대회 연습을 하느라 아내와 누리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는 경기 결과를 궁금해 하는 아내와 허 집사님에게 미국에서 경험한 첫 야구 경기와 그날의 선수로 자신이 뽑혔던 이야기를 우동과 아보카도가 들어간 마끼를 먹으며 재잘재잘 얘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주는 피카렐라가 준 공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IMG_2440.JPG 메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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