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리그

by 생각의 변화

리틀리그


몇 가지 가구와 기본적인 세간을 장만해서 집은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췄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은 생활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했다. 어느 미용실에 가야 하는지, 한국 음식점은 어디에 있는지, 팁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롱아일랜드 내에서 볼만한 곳은 없는지 등등. 태풍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이웃이었다.

물론 우리가 살았던 아발론 아파트에도 이웃이 있었다. 우주와 누리가 다니던 학교는 시그널 힐(Signal Hill) 초등학교였는데, 우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모든 초등학생들은 이 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시그널 힐 초등학교로 가는 스쿨버스는 아침 8시 15분에서 20분 사이에 아발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출발했는데, 우리 부부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면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눈이 파란 여자 아이도 있었고, 귀여운 여동생을 둔 남자 아이도 있었고, 우주와 누리처럼 함께 학교를 같이 다니는 형제도 있었다. 물론 이들도 이웃이긴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은 당연히 없었고, 혹 친분을 넘어선 그들의 호의가 있다한들 우리 부부의 영어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추수감사절 즈음해서 아내와 나는 주말에 갈 교회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교회를 가는 것이 좀 불경스럽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한국에서 이름만 얘기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형 교회에 다녔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닌 건 신앙심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미국에서 교회를 다니기로 결정한 것 역시 신앙심 때문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없었던 신앙심이 미국에 간 지 한 달이 지나서 갑자기 생겼을 리는 없지 않은가. 현실적인 이유는, 부끄럽게도, 우리 가족에게 이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우리 가족이 찾아간 교회는 집에서 십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헌팅턴에 있는 좋은이웃 교회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좋은이웃 교회를 선택한 것은 집에서 비교적 가까이 있는-나중에 확인해보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교회는 플레인뷰에 있는 물댄동산 교회였다-교회이기도 했지만 ‘좋은 이웃’이라는 교회의 이름에 호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내 맘은 믿음이나 신앙, 또는 동산보다는 ‘이웃’에 훨씬 더 끌렸으니까.


우주와 누리는(특히 우주는) 교회에서 재잘재잘 말을 잘해서-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쓸 일이 전혀 없으니까 교회에서 더 수다스러웠던 것 같다-교회 어른들이 귀여워했다.

좋은 이웃 교회는 교인이 칠팔십 명 정도인 작은 교회였고,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도 열 명 정도였다. 우주랑 동갑인, 목사님의 딸을 포함해서 모든 아이들은 어른들의 질문에 ‘예, 아니오.’ 정도의 간단한 대답은 할 줄 알았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되는 수준의 한국말을 구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주와 누리는 한국에서 온 지 채 한 달이 안 된 아이들이었고 둘 모두 한국말 밖에 할 줄 몰랐으니 영어만 쓰는 아이들만 보던 교회 어른들이 보기에는 한국말이 유창한 우주와 누리가 신통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와 누리는 교회 어른들과 목사님 부부, 그리고 미국에 있는 동안 아내를 세심하게 챙겨줬던 허 집사님으로부터 애정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지내게 되었다.

교회를 꾸준히 다니게 되면서 교인들을 통해서 롱아일랜드 지역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미국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들도 많이 얻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늘 심심해하던 우주는 야구 레슨도 받고 교회의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점점 더 즐거워했다. 하지만 교인들을 통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리틀야구 리그에 관한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리틀 야구팀에 가입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르신들은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을 못했고, 다른 지역에서 온 교인들은 멜빌 지역이 아니라서 몰랐고, 목사님 부부는 딸이 야구나 소프트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12월에 내린 폭설이 미처 녹지 않고 주차장 곳곳에 쌓여 있던 1월 어느 날, 우리 집 우편함에 하프할로우힐 리틀리그(Half Hollow Hills Little League)에 등록하라는 우편물이 도착했다.


(15화에서 계속)



IMG_0301.JPG 눈속에 파묻힌 아발론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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