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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닌데(2)

졸업생 공연 연습 일지

by 생각의 변화


0925 보컬 트레이닝

지금은 어떤 식으로 연습하는지 모르지만 삼십 년 전에 세란극회는 운동-발성 연습-장면 연습 순으로 연습했다. 배우를 할 때도 그랬지만 연출을 할 때도 발성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발성이 되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는 어렴풋하게 알았지만 (선명하고 울림이 좋은 소리) 그 소리를 내기 위해서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당시에 우리가 하던 훈련방식은 언젠가부터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방식을 따랐던 것 같은데, 아마도 가끔 초빙했던 외부 연출에게 배웠던 걸 적당히 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효과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목소리를 매일 듣다 보면 사실 그닥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발성 연습의 효과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언젠가 연습을 끝내고 밥을 먹기 위해 학교 앞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는 열 명 정도였고 저녁 시간이어서 식당 안이 꽤 붐볐다. 들어갔을 때는 몰랐는데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 보니 식당 안이 너무 시끌벅적했다. 2차 장소로 옮기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가 안에 가방을 두고 온 게 생각 나서 다시 들어갔는데 그때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토록 시끌벅적했던 식당이 너무나도 조용했던 것이다. 간혹 들리는 건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조용하고 낮은 대화 소리뿐. 그 식당의 시끌벅적함의 원인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였다. 우린 어느새 발성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목요일 오전 진료를 마치고 집에 들러 대본을 들고 부리나케 나온다. 네이버 설명에는 지하철 역에서 나와 꽤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50미터 정도 올라가면 왼쪽에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원래 설명서도 안 읽거나 대충 읽는 편인데 오시는 법 설명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커피숖 오른쪽으로 들어와 지하 1층으로 내려오라고 돼 있다. 지하 계단을 절반을 지날때 쯤,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한 타이밍에 낮은 천정과 계단 양쪽 측면에서 자동 센서등이 켜지면서 스튜디오 이름이 쓰여 있는 회색 철문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김여울이 반갑게 인사한다. 우리 교회 지휘자다. 일주일 전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예배가 끝나고 난 뒤 교회 지휘자에게 보컬트레이닝에 대해서 물었더니 자신도 성악 전공자 뿐 아니라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들의 보컬 트레이닝도 한다고 해서 수업을 받기로 했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등과 옆구리 근육을 늘리는 몇 가지를 연습을 하고 복식호흡기와 스트로우를 이용해서 스케일에 맞춰서 소리를 내는 연습을 했다. 늑간근들을 스트레칭하고 횡격막을 단련시키고 성대를 낮춰(이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구강 안쪽을 넓게 울리면서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틀은 예전에 배웠던 것과 비슷하지만 전문가로부터 받으니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도 보고 운전하다가 네비게이션을 켜고 하는 느낌이랄까.


연습을 마치고 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연극 준비에 대해서 얘기한다. 일주일 이상의 대관료와 단순한 무대장치 비용만으로도 꽤 제작비가 든다는 사실에 김여울이 놀란다. 공연 기간 동안에는 며칠 병원문을 닫거나 단축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손해비용은 계산에 넣지도 않은 것이다.

“근데 연극을 왜 하시는 거예요?” 김여울이 묻는다.

생각해 보니 목사님도 연습 장소로 소예배실을 빌릴 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근데 대체 나는, 혹은 우리 네 명은 왜 연극을 하는 걸까. 돈도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고 연극배우로 성공을 꿈꾸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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