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닌데(15-3)

졸업생 공연연습

by 생각의 변화

1227 서머싯몸


낙근은 체감온도 영하 20도였다는 금요일에 <마트로시카>를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일요일 관극을 제안했다. 은하는 선약이 있어서 오지 못했지만 나머지 넷은 오후 5시 공연을 보기로 했다.

2시 즈음에 낙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문사에 보낼 내 사진(공모전에 보낸 내 수필이 장려상을 받게 돼서 수상소감과 함께 보낼 사진이 필요했다)도 찍고 교보문고에서 대본도 둘러볼 겸 일찍 만나자고 했다. 교보문고에서 희곡을 조금 둘러 보았지만 딱히 적당한 건 없었다. 모든 조건이 딱 들어맞는 희곡을 구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아닌데>가 거의 모든 면에서 사실 완전히 딱이긴 한데. 낙근은 ‘조련사’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없는 걸 가장 우려스럽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낙근이 아니라도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만.

내 생각엔 낙근-영환의 조합이 선규-성복(다음날 캐스팅이 확정됐다)으로 바뀌면 청우극과는 완전히 다른 조련사, 좀 더 나아가면 전혀 색다른 <그게 아닌데>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건 ‘계획’이 아니라 ‘추측’일뿐.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몇 장을 찍고 근처 종각역으로 가는 길에 몇 장, 스타벅스에서 카페 라떼를 마시면서 몇 장을 찍었다. 안 그래도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찍어서 과한 설정인데 동상 받침에 새겨진 ‘왕’이라는 글자만 화면에 나와서 유독 눈에 띄었다. 우린 농담으로 장려상보다는 좀 더 큰 상을 받은 후에 쓰기로 했다. 앞으로 쓸 일이 있을까? 노벨문학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디 공모전에서 대상이라도 받아야 (아무리 그래도 세종대왕은 너무 과한데).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 3가에 내려서 조금 일찍 도착하니 근처 카페에 이미 선규가 와 있었다. 15분 정도 후에 성복이 도착했다. 명보 아트홀은 예전에 명보극장을 개조한 거라고 한다.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게 영화 극장이 변해서 연극 공연장이 될 줄이야. 대한 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명보극장 까지 모두 사라진지 오래다. 삼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예전엔 극장에서 영화를 봤었대’라는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동그래지는 젊은이들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네 명 모두 <마트로시카>에 완전 만족했다. 연극 내내 웃고, 낄낄 거리다가 크게 웃다가 눈물도 흘리다가 끝이 났다. 옆에 앉아 있던 성복이 발성이 풍부한 목소리로 웃어서 특히 잘 들렸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극단 마트로시카는 예술후원금을 받기 위해 시의원을 모시고 운명적인 공연 <달동네의 로맨스>에 임한다. 하지만 야심에 비해서 실력은 좀 부족한 연출, 모든 면에서 모자란 조연출, 낙하산 배우와 기존 배우의 신경전이 맞물리면서 연극은 점점 어긋나고 급기야 이혼서류를 들고 나타난 연출의 부인 때문에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다. <달동네의 로맨스>라는 연극과 이 연극을 만드는 이들의 좌충우돌이 극중극으로 연결되고, 아재개그로 웃기던 장면이 다음에 반복될 때는 슬랩스틱으로 웃기고, 여기에 초반에 뿌려놓은 여러 밑밥들(검은 비닐봉지, 상한 도시락, 알콜 알러지등)을 적절한 시기에 거둬 들이면서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하다하다 PPL까지.


연극도 재밌었지만 코미디 연기자들을 실제로 보면서 얻게 된 것도 많았다. 특히 연출역을 맡았던 윤제문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절제돼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꽉 찬 것 같은 연기. 아마추어인 내 수준에서는 일상을 겨우 모방해서 연기를 만드는 것인데, 그의 연기는 그걸 넘어선 무엇이었다. 연기는 삶을 모방하지만 그걸 넘어선 어떤 것이 아닐까. 내 생각엔 삶과 연기 사이에는 상상력이 존재할 것 같다. 사실 그게 연기의 매력이기도 하고.


우린 극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가 순대전골과 맥주를 시킨다.

“금요일보다 오늘 공연이 더 좋았어. 그날은 관객이 별로 없어서 그랬나봐.” 낙근이 말한다.

“병원 근처에 순대국밥집이 몇 개 있는데 다 별로에요. 이 집은 맛있네요.” 내가 말한다.

“내가 한때 순대국밥집 했었다는 얘기했나? 집사람이 식탁도 닦고 반찬도 놓고 그랬다니까”

낙근의 얘기를 듣고 있던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진다. 낙근이 오다가다 인사를 하게 된 이웃이 있었는데 그는 근처 순대국밥집 사장이었다. 언제 한 번 들르라는 얘기를 듣고 식당에 갔는데 순대국밥이 맛있다고 하니까 음식을 더 싸줬고 집에서 아이들도 좋아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 사장님 부부와 부부 동반으로 만나서 발렌타인 30년산 한 병을 다 마시고 덜컥 대출을 받아서 1호점 프랜차이즈를 경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초반에는 매출이 꽤 나왔지. 근데 정산을 해 보니까 영업이익이 하나도 없어. 좋은 재료 쓰고 양 많이 주니까 손님은 많이 오는데 그렇게 장사하니까 남는 게 있을 리가 있나.”

“와, 무섭다. 얘 완전 P라니까. 낙근이 같은 애들 옆에 있으면 안 되는데.” 선규가 앞에 있던 맥주를 마시면서 말한다.

“그래도 결국 해피엔딩이었어. 헌신적인 점장이 들어와서 엄청 열심히 해서 흑자가 됐거든”


오늘 들었던 얘기 중에 가장 놀라운 얘기였던 순대국밥 에피소드는 낙근이 즉흥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이야기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를 보는 선규와 낙근의 관점에 차이가 있었듯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부터 상반되고 모순된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서머싯몸은 이미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간과 삶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이중성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잊지 말아야 할 건 그가 ‘유쾌하게’ 보여줬다는 것. 그걸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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