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림 : 스크린 도어
스크린 도어
한상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중문이 있다
전동차가 떠난 후
검은 스크린이 된 문에는
고흐의 한 족 귀가 맴돌고
여배우의 슬픔 눈망울이 날아다니고
어느 실직 가장의 구겨진 자존심이
아까부터 모니터 속을 검색 중이다
전 역을 출발한 전동차가
스르르 진입해오면
다시 문이 되기 위해 긴장하는 벽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자화상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퍼즐을 맞추고 있다.
A Screen Door
Han, Sang-rim
Between people and people lies a double door.
After the train leaves,
On the black screen, once a door,
The ear of Gogh hovers,
The sad eyes of an actress float by,
And a father, losing his job and dignity,
Has been searching a monitor for some time.
When another train from the last station
Comes into the platform
People standing in a line,
Before the wall, nervous to be a door again,
Watching their own portraits,
Are endlessly doing their puzzles.
삶의 전장(戰場)에서 후퇴한 그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너와 나를 가르는 이중의 벽 앞에 서있다. 그중에는 귀 잘린 고흐도 있고, 광고판 위에서 눈물짓는 여배우도 있다. 한 푼도 벌지 못한 채 담뱃값만 축낸 중년의 사내는 무능의 구실이라도 찾듯 열심히 휴대전화를 쓰다듬고 있다. 그리고 전동차가 들어오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또다시 벽 앞에 줄을 선다. 벽이 문으로 바뀌기 전 그들은 검은 스크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삶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패잔병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