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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Feb 15. 2023

양배추의 추억

마경덕 : 양배추 

양배추

      마경덕


낱장인, 나를 주장할 수 없었어요

여러 겹이 되기 위해

하얗고 캄캄한 세상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합류하지 못한 몇 장의 바깥은 밭고랑에 버려진다고 했어요

앞과 뒤가 겹쳐 하나로 뭉쳐지고

온전한 이름을 얻었어요

누군가 굴러갈 수 있을 때까지 참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동그라미는 제가 골몰한 일생이에요

침묵의 크기만큼 어둠도 둥글게 말렸어요

어둠이 찢어지지 않도록 곡선을 만드는 기술은

배운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었어요

하얀 어둠을 한 꺼풀 벗겨내면 우묵한 엉덩이가 나타나지요

한 방울의 햇살도 스미지 못한

맑은 어둠의 엉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에 칼날을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희고 맑은 엉덩이를

한 장, 한 장 보여 드릴게요

한마디에 눌러앉은

침묵이 얼마나 단단한지 저울에 올려보면 알아요 


Cabbage

       Ma, Kyong-duk


I could not claim to be a mere piece.

To make myself something of many layers

I had to pierce into white but dark world. 

They said some outer pieces unable to join would be deserted in a furrow. 

Pieces, front and back, were put together into one

And got a right name.  

Some told me to endure till I could roll. 

That’s why my life clings to a circle. 

The deeper silence gets, the rounder darkness is rolled up.  

Though not learning it, I knew well 

How to make a curve without tearing darkness.

If one layer of white darkness is taken off, a hollow butt is seen.   

The clear but dark butt 

That a drop of the sunlight could not reach.

Unless a knife is pulled on the most beautiful curve in the world,

I will show you the white and clear butts 

One by one. 

You will see how hard the silence, retreated by a word, is.

When you put it on a scale.  


양배추 한 포기에 깃든 사연은 잎사귀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지요. 검은흙에 묻힌 양배추의 여린 흰 잎들은 밭고랑에 버려지지 않으려 있는 힘껏 서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둥글게 잘 자란 양배추는 깊은 침묵과 어둠 속에서도 그 흰 속살을 드러냅니다.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요. 데구루루 구르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굳이 어둠과 침묵을 버리지 않아도 선명히 드러날 수 있음을. 함부로 칼로 도려내지만 않는다면 뽀얀 엉덩이를 수줍게 보여줄 수 있음을. 단단해진 몸뚱이를 저울에 올려보세요. 한 포기 양배추의 사연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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