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덕 : 양배추
양배추
마경덕
낱장인, 나를 주장할 수 없었어요
여러 겹이 되기 위해
하얗고 캄캄한 세상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합류하지 못한 몇 장의 바깥은 밭고랑에 버려진다고 했어요
앞과 뒤가 겹쳐 하나로 뭉쳐지고
온전한 이름을 얻었어요
누군가 굴러갈 수 있을 때까지 참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동그라미는 제가 골몰한 일생이에요
침묵의 크기만큼 어둠도 둥글게 말렸어요
어둠이 찢어지지 않도록 곡선을 만드는 기술은
배운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었어요
하얀 어둠을 한 꺼풀 벗겨내면 우묵한 엉덩이가 나타나지요
한 방울의 햇살도 스미지 못한
맑은 어둠의 엉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에 칼날을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희고 맑은 엉덩이를
한 장, 한 장 보여 드릴게요
한마디에 눌러앉은
침묵이 얼마나 단단한지 저울에 올려보면 알아요
Cabbage
Ma, Kyong-duk
I could not claim to be a mere piece.
To make myself something of many layers
I had to pierce into white but dark world.
They said some outer pieces unable to join would be deserted in a furrow.
Pieces, front and back, were put together into one
And got a right name.
Some told me to endure till I could roll.
That’s why my life clings to a circle.
The deeper silence gets, the rounder darkness is rolled up.
Though not learning it, I knew well
How to make a curve without tearing darkness.
If one layer of white darkness is taken off, a hollow butt is seen.
The clear but dark butt
That a drop of the sunlight could not reach.
Unless a knife is pulled on the most beautiful curve in the world,
I will show you the white and clear butts
One by one.
You will see how hard the silence, retreated by a word, is.
When you put it on a scale.
양배추 한 포기에 깃든 사연은 잎사귀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지요. 검은흙에 묻힌 양배추의 여린 흰 잎들은 밭고랑에 버려지지 않으려 있는 힘껏 서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둥글게 잘 자란 양배추는 깊은 침묵과 어둠 속에서도 그 흰 속살을 드러냅니다.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요. 데구루루 구르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굳이 어둠과 침묵을 버리지 않아도 선명히 드러날 수 있음을. 함부로 칼로 도려내지만 않는다면 뽀얀 엉덩이를 수줍게 보여줄 수 있음을. 단단해진 몸뚱이를 저울에 올려보세요. 한 포기 양배추의 사연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