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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22. 2022

시(詩)가 찾아오면

진샤 : 퇴고의 과정

퇴고의 과정

             진샤


나는 아직 초고의 몸


어떤 단어들이 내게 와

수정의 핑계로 나를 헤집을지

아직은 벌어지지 않은 일


당신의 이야기가 문단째

아니 당신이 잘려나가고

폐허처럼 남은 나의 용지에는 비극뿐


재고와 숙고 그리고 교정이 흩트려 놓은 나의 퇴고가

삭제와 저장 사이에 찰나를 숨길 즈음


당신의 이마에 흐르던 서사는

우리의 공공재

함부로 지껄일 수 없는


묘사는 안개처럼 밝지 못한데

퇴고는 조급한 등을 보이며 뿌옇게


나의 타자(打字)가 머뭇거리던 자리는

당신이란 서설이 피어나

어느새 우리가 갖게 된 새로운 주소


마지막 퇴고는

언제나처럼

최초의 파쇄


The Process of Polishing  

                       Jinsha


Still I am a rough draft.


It is yet to happen

For some words to come to me

And to dig me up on the excuse of revision.


When some phrases from your stories,

And you yourself are absolutely cut off,

There merely remains a tragedy on my ruined paper.  


While my polished draft under repeated considerations and corrections

Hides the very moment between deletion and saving,  


The narratives flowing on your foreheads

Would be open to everyone

And never be rashly spoken.


Descriptions are still dim like a mist

But the polished draft hastily turns its back,


And the foggy places where my typewriter dithers

Has already become our new address

And, there, your narratives come into flowers.


The last polishing is,

As always,

The first shredding.


시인의 몸으로 시가 들어옵니다. 시어들이 떠오르고, 자리를 잡고, 뜻을 더해서 어느새 서툴지만 행복한 초고가 만들어집니다. 읽고 또 읽어 자르고 빼고 바꾸어 퇴고를 거듭하면 어느새 초고는 온몸이 잘린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지요. 누군가에게 읽혀도 될지 망설이고, 마음에 품은 생각은 여전히 모호한데 나의 퇴고는 이미 손에서 멀어집니다. 여전히 자판(字板)을 헤매는 손가락 사이로 이미 자리한 퇴고 위에서 새로운 서사(敍事)는 시인과 만나 꽃으로 피어나지요. 하지만 언제나 퇴고하는 순간 시인의 시는 초고와 같이 파쇄(破碎) 됩니다. 또 새로운 시를 만나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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