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4년...

by 최용훈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첫 글을 올린 것이 2020년 7월 17일. 벌써 4년이 넘었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렇게 꾸준히 했던 때가 있었는가 싶다. 8개의 매거진에 올린 글의 숫자가 2024년 9월 4일 현재 1,187편. 전공인 영문학과 영어 이야기. 셰익스피어와 인문학 등 강단에서의 40여 년 세월이 글 속에 담겼다. 한국 시 500편을 영어로 옮겼고 간단한 감상도 썼다. 영시도 200여 편 번역하여 올렸고 어줍지 않게 나의 시와 수필도 몇 편 올렸으며 시사에 관한 글을 써보기도 하였다. 이 무슨 위험한 모험인가! 가끔은 온라인상의 빈 공간을 무책임하게 어지럽힌다는 생각에 그만둘까 한 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흥미를 줄 얘기도 그런 글재주도 내겐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론 부끄럽고, 간혹 회의감이 들기도 하면서 마치 목적지 없는 긴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브런치를 알게 된 것은 글을 올리기 불과 한두 달 전이었다. 정년퇴직을 1년쯤 남겨두고 조금은 한가로웠던 시기였기도 하려니와 몇 권의 졸저를 내놓고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 때였다. 동료 교수 한 분이 브런치에 글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글은 책에나 쓰는 것이라는 고루한 생각이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시간과 노력이면 차라리 책을 내지.’ 30여 년을 함께 했던 출판사 사장 친구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겠다고 말하자 파안대소하면서 “최 교수도 이제 늙었네. 아무도 안 볼 글을 일기처럼 써보겠다니. 왜 이제 종이책은 시시해? 아니면 자신 없어?”라고 농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좋은 글은 자기가 퍼서 책을 내면 되겠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분명 내게는 격려의 말처럼 들렸다. 그 좋았던 친구가 이른 나이에 건강을 잃어 출판사를 정리하겠다고 알려왔을 때, 나는 이제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암담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아무튼 나는 심심파적 같이 때론 진지하게 거의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하루에 몇 개의 단문을 써서 내 서랍에 넣어두고 올릴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마치 연애라도 하듯 나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부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부터 브런치가 뜸해졌다. 마치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싫증난 아이처럼 유튜브라는 새로운 놀이터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매력도 있었다. 나의 목소리로 무언가를 읽어주고 얘기한다는 것이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브런치에 대한 처음의 애정(?)을 회복한 것은 한두 달 전부터였다. 왠지 다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누군가 읽지 않아도, 여기저기 흘러 다니다가 우연히 조우하는 기대감 속에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연 브런치 화면에 눈에 띄는 숫자가 있었다. 조회수 오십만! 하긴 쓴 글의 수가 많지 않아도 조회수가 백만이백만을 넘는 브런치 작가도 많겠지만 나는 그 숫자에 감격했다. 내 못난 글을 끝까지 읽지는 않았어도 누군가 열어서 제목이라도 보았다는 감동. 글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몹시 흥분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조회한 글들 가운데는 이전에 썼던 옛날 글들이 적잖이 있었다. 그 글들을 누군가 여전히 찾아보았다는 사실은 내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내가 쓴 책들을 누가 보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첫 페이지를 열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브런치의 글은 누군가 열어보았다는 흔적이 남는 것이 아닌가!


내 글은 크게 흥미롭지도, 새로운 정보를 주지도, 문학적 아름다움도 없다. 어떤 때는 강의노트 같고 어떤 때는 지식의 조각들을 어설프게 꿰어 맞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간혹 수치심이 든다. 그런 글들을 누군가가 조회해서 가끔은 읽어주고 있었다니!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때늦은 깨달음이 들었다. 수 십 년에 걸쳐 출판한 책들은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떤 방식으로 읽혔는지 알 수 없지만, 브런치를 통해 새삼 글 쓰는 일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솔직해야 하겠구나. 아는 말만 해야겠구나. 읽는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겠구나. 기분대로 혹은 가식적으로 글 앞에 서서는 안 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들이 밀려왔던 것이다.


가끔 브런치에 들어가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본다. 흥미롭고, 새롭고, 깊이 있는 글들이 참 많다. 짧은 글 하나가 어떤 강의, 어떤 책보다도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느낀다. 컴퓨터를 켜 무언가를 쓰고,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런 글밭이 있음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더군다나 몇 년 전 만나 우정을 함께 나누는 브런치의 인연도 생겼다. 한상림 시인님, 이은희 시인님 그리고 이창훈 시인님. 새로이 인연이 된 이성숙 작가님. 그분들에게서 너무도 큰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4년 전 브런치를 시작한 덕분이다. 오늘도 난 브런치에 올릴 글의 제목을 찾는다. 그것은 너무도 신나고 유쾌한 일이다. 글은 고뇌와 고통 속에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환희와 기대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걸음일 수도 있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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