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더 큰 자리
마야 안젤루 : '나는 일어선다'
두려움을 느낄 때, 무언가 불안정하고 그럼으로써 육체적으로도 위축감을 느낄 때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매일처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이러한 느낌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제 아무리 권세가 있고, 부유하고, 학식이 높더라도 결코 이러한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것이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흔들리는 갈대’라 하지 않던가?
20년쯤 전의 일이다. 왠지 불안하고, 모든 것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고, 게다가 위궤양으로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의욕도 생기지 않고 삶 자체가 부담스럽던 시기였다. 책, 음악, 사색 그 무엇으로도 답을 얻지 못하던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딱히 이유도 없었다. 바닥을 친 자존감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갱년기인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걸까?
어느 날 나는 강의실에서 미국의 흑인 여성시인 마야 안젤루의 시를 얘기하고 있었다. 흑인 노예들의 진부한 외침이 젊은 학생들에게 무슨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시의 첫 연에 강하게 꽂히고 말았다.
신랄하고 비틀린 거짓으로
그대는 나를 역사에 기록할 수도 있겠지.
흙발로 나를 짓밟을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일어설 거요. 먼지처럼.
먼지처럼! 아 먼지처럼 일어서다니! 그 하찮은 먼지가 햇빛 안으로 뽀얗게 솟아오르는 것을 연상하며 나는 먼지 같은 나의 존재가 새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하물며 먼지도 그럴 진데 나는 내 속에 담긴 즐겁고 너른 공간을 보지 못했구나. 내 안의 두려움과 무기력 옆에서 먼지처럼 솟아오르는 환희와 정열을 무시하고 있었구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의혹이 내 눈을 흐려 나는 더 넓은 공간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구나. 의심과 불행은 언제나 삶에 따라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품어, 즐겨 얘기할 수도 있었던 것이구나.
시련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자존감의 상실이 그것이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비난에 취약해지는 나약한 자아. 의학적으로는 이때 우리 몸에서는 혈액의 순환이 위축되고 대부분의 혈액이 팔과 다리로 흘러간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의 뇌와 내장기관은 약화된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소화도 안 되고 명료한 사고가 힘들다. 무의식은 끊임없이 긴장되어 논리만으로는 불안과 절망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순간 기억할 것은 우리의 마음에는 불안과 긴장과 슬픔을 느끼는 곳보다 더 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먼지처럼 다시 일어날 희망과 용기가 내 속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달과 태양처럼
조류(潮流)처럼 확실하게,
솟아오르는 희망처럼
여전히 일어설 거요.
.....
공포와 두려움의 밤을 뒤로하고
나는 일어설 거요
놀라우리만큼 명료한 새벽 안으로
나는 일어설 거요
늘 떠오르는 달과 태양, 언제나 같은 모습의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의 희망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가 솟아오른다. 밤의 어둠을 뚫고 새벽의 밝음 속으로 일어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억해야 한다. 내 마음속 자리를. 자신에 대한 의심과 무기력, 절망과 고통의 자리보다 더 큰 용기와 희망과 기대의 공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