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옛 친구가 생각난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옮겨왔던 그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학번으로는 두 해가 위였다. 선배처럼, 친구처럼 난 그를 좋아했고 때론 존경했다. 멋진 사람이었다. 특히 그의 은발은 정말 백만 불짜리였다. 50대 초반에 만났지만 그는 멋진 초로의 신사처럼 보였다. 조금은 왜소한 체격이었으나 양복 수트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우린 그렇게 만나서 가까워졌다. 서로 말도 통하고 배짱도 맞았다. 같은 직장에서의 공통 관심사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처럼 함께 어울렸다.
‘바젤,’ 그곳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했던 그는 유머 감각이 특별한 사람이었다. 어찌 그리 촌철살인 같은 말들을 쏟아내는지... 그와 함께 한 자리에 있던 여성들은 누구나 그의 매력에 쉽게 빠지곤 했다. 부러웠다. 같이 생활하던 6년 동안 우린 거의 매일처럼 만났다. 저녁 시간이면 그는 내 원룸 창가에서 나를 부르곤 했다. 운동 삼아 한참을 걷다가 우린 여지없이 바젤로 향했다. 맥주 한 잔에 카페 여주인과 한참 실없는 농담을 건네다 함께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지방대학에 근무했었고 홀로 지내다가 주말에 집에 올라가곤 했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와 나는 같은 원룸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사람들은 농 삼아 두 분이 연애하시는 것 아니냐며 웃곤 했다. 돌이켜보면 참 좋은 시절이었다. 우린 젊었고 자신감에 넘쳐있었고 무엇보다도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들이 남겨져 있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의 대학으로 돌아갈 결정을 했을 때 솔직히 먼저 걱정이 된 것은 하나뿐이었다. 이제 누구와 놀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까? 하! 누가 들으면 정말 연애라도 한 줄 알겠다. 가끔 서로 하던 말인데 그 나이에 고등학생 시절 친구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걱정을 했다. 떠나는 사람은 그렇다고 해도 남겨질 사람은 더 허전할 텐데 하며. 그리고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두 사람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우린 캠퍼스 곳곳에 스냅사진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서울에 올라간 뒤 우린 밤마다 전화를 했다. 전화는 한두 시간을 훌쩍 넘기곤 했다. 졸음이 쏟아지기 전까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을까? 나는 혼자였지만 그는 가족과 함께 있었을 텐데... 그래도 그와 나는 매일 밤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더 이상 공통의 대화가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으며 서서히 만남도 전화도 줄어들었다. 그 정도의 이치는 알고 있을 나이였기에 우린 별다른 얘기 없이 멀어져 갔다. 서울에서의 만남도 더 이상 없었다. 아주 가끔 안부를 묻고 일 년에 한두 번 식사를 같이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을 보냈다. 그가 나보다 앞서 정년을 맞았고 한 해 뒤 나 역시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미국에서 살던 그의 아들이 내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제일 먼저 나온 소리는 ‘왜?’였다. 살고 죽음에 무슨 이유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가 서울로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마음속으로 똑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날, 학교 앞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헤어지던 날, 그는 집에 가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 후 그가 떠나기 며칠 전 함께 노래를 부르던 카페에서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눈물이 났다. 나 역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뜬 지 두 해가 흘렀다. 그리고 문득 그의 생각이 났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최 교수는 참 나이스 해. 근데 곁을 잘 주지 않더군.”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 둘이만 어울렸던 것이니까. 그런데 그 말이 지금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 내가 써온 잡문들을 읽는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글에 마음이 담겨있질 않은 것 같아.” 그래. 40년이 넘게 글을 가르쳤고, 문학을 얘기했던 나지만 나는 안다. 내 글에는 ‘곁’이 없다는 것을. 아마도 성격 탓일 게다. 아니면 글재주가 없던가. 오늘 그가 무척 보고 싶다. 그의 농담 같은 진담이 듣고 싶다. 들어도 싫지 않을 그의 얘기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