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늙으면'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hen You Are Old
William Butler Yeats
When you are old and grey and full of sleep,
And nodding by the fire, take down this book,
And slowly read, and dream of the soft look
Your eyes had once, and of their shadows deep;
How many loved your moments of glad grace,
And loved your beauty with love false or true,
But one man loved the pilgrim soul in you,
And loved the sorrows of your changing face;
And bending down beside the glowing bars,
Murmur, a little sadly, how Love fled
And paced upon the mountains overhead
And hid his face amid a crowd of stars.
그대 늙으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대 늙어, 잿빛 머리 되고, 잠에 취해
화롯가에서 졸고 있다면, 이 시를 꺼내
천천히 읽어요. 그리고 꿈꾸시오.
고왔던 그대의 눈매, 그 깊은 그림자를.
많은 이들이 그대의 빛나는 우아함의 순간들을 사랑했소.
그리고 거짓이든 진심이든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소.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그대의 흔들리는 영혼을 사랑했지.
그는 변해 가는 얼굴에 담긴 그대의 슬픔마저 사랑했소.
이글거리는 장작 옆에 몸을 구부려
조금은 슬프게 속삭이시오. 어떻게 사랑이 떠나갔는지,
어떻게 높이 솟은 산 위로 사라져
별무리 속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는지.
많은 평론가들의 주장 :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예이츠가 쓴 이 시의 주인공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 배우이자 혁명가 그리고 아일랜드 문예운동의 주창자였던 모드 곤(Maud Gonne)이라는 여성이었다.
1889년 예이츠는 처음 모드 곤을 만났다. 그리고 첫눈에 그녀에게 빠지고 만다. 참 시인이란! 예이츠가 쓴 대부분의 뛰어난 시구들이 그 만남 이후에 써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날 이후 예이츠의 가슴속에 가장 크게 자리한 것은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2년 동안 예이츠는 적어도 네 번 이상 그녀에게 청혼하였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1903년 모드 곤이 독립운동의 동지였던 존 맥브라이드(John McBride)와 결혼하자 예이츠는 절망에 빠지고 만다.
예이츠는 자신의 시 ‘하늘의 융단’(The Cloth of Heaven)에서 애절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당신의 발아래 내 꿈을 뿌렸소.
사뿐히 밟으시오. 내 꿈을 밟는 것이니.
하지만 모드 곤의 대답은 차가웠다. “당신은 당신이 불행이라 부르는 그것으로부터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행복감을 느끼죠. 결혼은 바보 같은 짓이랍니다. 시인은 결혼하지 말아야 해요. 세상 사람들은 내가 당신과 결혼하지 않은 것에 감사할 겁니다.”
이 무슨 궤변인가? 매력을 못 느끼겠으면 차라리 그렇게 말하지 왜 애꿎은 시인들을 독신으로 만드는 건지... 불행하게도 그녀의 남편은 영국군에게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녀에 대한 예이츠의 사랑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가 홀로 된 모드 곤에게 다시 청혼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이츠의 청혼 대상은 놀랍게도 그녀가 아니었다. 그는 모드 곤과 프랑스 정치인이었던 루시엥 밀부아예(Lucien Millevoye) 사이에서 나은 딸 이조 곤(Iseult Gonne)에게 청혼하였던 것이다. 물론, 당연히 거절당했지만!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이 시인의 상상력은 참으로 일상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었을지도. 하지만 그들 사이의 진실을 누가 알겠는가? 다만 시와 시인의 생애가 일치하리라 믿는 것은 성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모드 곤은 86세까지 긴 인생을 살다가 1953년 더블린에 묻혔다. 예이츠는 그보다 훨씬 앞선 1939년에 세상을 떠났다. 시의 주인공이 진정 모드 곤이었다면 예이츠는 자신의 시를 늙은 그녀가 읽기를 바랐을까? 흔들리는 영혼, 변해가는 아름다움. 세월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데 어찌 사랑만이 영원하길 바랄 수 있을까? 타오르는 불가에 앉아 하릴없이 가버린--놓쳐버린 사랑을 아쉬워 되뇌는 것이 인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