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아름다움, 용서하고 돌아서는 뒷모습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는커녕, 거울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거칠어진 피부, 늘어가는 주름, 머리칼도 옅어지고 옷을 입어도 테가 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포기하고 말지만 가끔은 자신을 좀 더 멋지게,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이 든 나도 이럴진대 외모에 민감한 젊은 남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현대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데도 외모가 단연 중요하다. 그런데 웬만큼 살아보니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반드시 타고난 미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그 젊음이 주는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한다. 조금 어색하고 서툴기는 하지만 활기에 가득 찬 열정과 자신감은 얼마나 보기 좋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자신만이 지닌 아름다움을 놓치기 일쑤다. 멋진 양복에 빛나는 구두는 오히려 그들이 지닌 열정 아래서 빛을 잃는다.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걸친 셔츠가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젊음만이 지니는 특권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꾸 그 아름다움에 무언가를 덧칠하려 한다. 그것은 마치 유리처럼 빛나는 계곡의 투명한 물에 화려한 물감을 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스스로에게 반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원컨대 젊은 아름다움이여!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라. 당신들은 너무도 아름다운 존재이니까. 존재만으로 빛나는 당신이니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년 나르키소스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누구나 그를 보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숲의 요정 에코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냉담한 나르키소스는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한다. 절망에 빠진 에코는 사랑의 신 에로스에게 배신당한 자신의 사랑에 대한 복수를 부탁한다. 에로스는 호수 물 위로 몸을 굽히고 있던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의 화살을 쏜다. 그 순간 그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것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자기애에 빠진 그의 결말은 비극이었다. 다른 대상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지나치리만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 못할지 모른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다른 사람의 눈에 비추는 아름다움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만큼 도시의 회색 건물 그늘진 모퉁이도 좋아한다. 그 한적함, 외로움, 서늘함이 나는 좋다. 호수에 비친 달만큼 강 위의 다리를 비추는 인공의 불빛도 좋다. 그 색색의 빛들이 가져다주는 흥분감, 그리고 그 밝은 불빛의 유희가 주는 역동성에 가슴 뛰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의 아름다움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찾아낼 때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라 무심한 태도, 우연히 지은 미소, 얼핏 보였던 하얀 다리, 힘든 일을 한 뒤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그 어떤 것이 우리를 아름답게 보이게 했을지 모른다. 아름다움은 자신도 모르는 우리의 표정, 태도, 말투 그리고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우리의 다른 모습에서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신만 못 보는 아름다운 구석 있지요.
뒷덜미의 잔잔한 물결 털 같은.
귀 뒤에 숨겨진 까만 점 같은.
많은 것을 용서하고 돌아서는 뒷모습 같은
그것은 무엇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많은 부분은 실제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당신이 보지 못한 자신의 아름다움이 지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 다른 사람들이 찾아내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이제 스스로 찾아내고 갈무리해야 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