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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귀의 몸부림

by 최용훈

어느 날 늙은 나귀 한 마리가 우물에 빠졌습니다. 나귀는 너무 노쇠해 등에 짐을 질 수도 누구를 태울 수도 없었습니다. 나귀 주인은 애처로운 맘이 들기도 했지만 얼마 살지도 못할 나귀를 우물에서 꺼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우물은 물도 나오지 않고 그냥 두어서는 사람이 빠질 위험도 있었지요. 결국 그는 나귀가 빠진 우물을 흙으로 덮어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삽으로 흙을 퍼 우물에 던졌습니다. 흙이 등으로 쏟아져 내리자 나귀는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깨닫고 몸부림치며 슬프게 울어댔습니다. 마음은 아팠지만 사람들은 애써 귀를 막고 연신 흙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귀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한 마음에 우물을 들여다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나귀가 몸을 흔들어 등에 떨어진 흙을 털어내고는 그것을 밟고 조금씩 우물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 그와 같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의 등 위에 흙이 쏟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흙에는 고통과 슬픔과 절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습니다. 곧 그 흙에 파묻혀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포에 사로잡힌 채 비명을 질러댑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발버둥 쳐 등 위의 흙을 털어내야 합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면 우리의 발, 몸통 그리고 머리까지 온통 흙으로 덮여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유가 가득 든 통에 빠진 개구리가 끊임없이 발버둥 쳐 우유가 버터로 바뀌자 그것을 밟고 통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우화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삶이 고단한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삶 속에서 기쁨이나 즐거움 못지않게 슬픔이나 아픔을 마주치게 마련입니다. 절대 나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걱정도 없고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사람도 알고 보면 마음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의 고통을 모르듯 나 역시 남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 수 없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흙에 묻히고 우유통 속에서 익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멀쩡히 살아서 또다시 삶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등에 떨어지는 흙을 털어내고 그 흙을 밟고 일어선 것이죠. 그들 역시 나약했고 시련 속에서 헤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특별한 용기와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차이는 그들에게는 살아야 할 절실한 이유가,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봄의 따사로운 햇살은 어느새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에 밀려 사라집니다. 가을의 서늘한 바람도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굴복합니다. 그 강렬했던 여름과 겨울도 시간의 흐름 속에 또다시 봄과 가을로 바뀌어 멀어집니다. 세상에 불변하고 고정적이며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기쁨이나 슬픔도 그렇습니다. 가난하거나 부유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털어내지 못하고 한 걸음 더 올라가지 못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살아야 한다는, 이겨내야 한다는 결심의 문제입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같은 삶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는 부자 집에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는 것은 운명입니다. 하지만 삶의 가치는 운명에 의해 매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중요한 것, 중요한 사람을 지닌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부유한 사람입니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 그것이 타고난 운명보다 더욱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본 것이 언제입니까. 흐르는 선율에 몸을 맡기고 속없이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은 언제입니까? 그저 망연히 앉아 한가로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본 것은 또 언제입니까? 바쁘고 힘든 세상사에 덮여 그 무게무너져버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밟고 일어선 후의 자유로움과 여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다시 일어서 힘찬 걸음을 내딛지 못합니다. 그저 우울과 분노와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될 뿐이죠. 절망 속에서 흙을 쏟아붓는 사람들을 원망만 해서는 깊은 우물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푸른 하늘도, 아름다운 음악도, 한가로운 오후의 사색도 영영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늙은 나귀의 절규는 그저 흙속에 묻여버리고 말겠죠. 마찬가지로 누구의 귀에도 고통받는 당신의 절규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어서세요. 털어버리고 올라오세요. 삶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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