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연은 참 불편하다

by 최용훈

인연


노란색인 줄 알았는데

옅은 카키색이었다

온라인 쇼핑에서 산 셔츠

다행히 싫지는 않았다

천도 얇고 단추도 마음에 든다

여름에는 흰색 민소매 위에

가을에는 카디건 속에 입으면

좋을 것 같다

스팀다리미로

구겨진 곳을 펴고 옷장 안에 건다

칙칙한 색깔 속에서 홀로

밝은 색이니 찾기는 쉬울 것 같다


내가 가진 저 옷들은

무슨 인연으로 내게 오게 된 걸까

옷만이 아니다

방안을 가득 채운 잡동사니들 모두

무슨 이유로, 언제 어디서 내 눈에

띄게 된 것일까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내게서

멀어지겠지 낡고 작아져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서,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버려지고, 무시되고 마침내

내 것이라는 소유의 틀 밖으로 던져지겠지


닫힌 옷장 앞에 서서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버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세월에 지고, 사람들에게 잊히고

이젠 쓸모가 다해서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별은 홀로가 아니고

서로가 하는 것

버리고 버려지는 것

떠나고 남겨지는 것

만나면 이별을 겪는 수많은 것들,

오늘은 카키색 셔츠가 그중 하나인가 보다

그러니 다음번 외출에는 입어봐야겠다

이왕 만났으니 한 번은 서로를 알아야겠지


인연은 참 불편하다 자꾸 신경 쓰이니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감자, 달걀, 커피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