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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07. 2020

다중화의 오류

무수한 대중의 외침에서 벗어나 내 안의 소리를 되찾아야 한다

사회적 증거와 다중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다수의 행위를 통해 사회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증거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행위를 모방함으로써 실수의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태도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웃음’(Le Rire)이라는 소책자에서 웃음의 특징은 전염성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웃을 때 더 큰 웃음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가짜 웃음 트랙을 삽입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에 의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눈물에도 적용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타인의 모습을 따라 행동하는 관찰자이고 모방자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대중매체들은 사회적 증거의 신화를 생산해 내는 원천이 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로 포장된 대중의 의견, 상업 광고들이 만들어낸 환상,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검색어의 범람, 이 모든 것이 오늘의 우리를 언제나 제삼자로 남게 한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에 귀화해 프랑스 학술원 회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의 작품에 ‘코뿔소’(Rhinoceros)란 희곡이 있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에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어느 한적한 도시에 이상한 병이 번진다.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 병은 코뿔소의 원시적 단순함과 난폭성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유행처럼 번져간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나약한 인간들로 인해 도시 전체가 코뿔소의 세상이 되고 만다. 마지막까지 인간이기를 고집한 주인공 베랑제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인간성을 옹호해 줄 동료가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풍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희곡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의지로 세상을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부와 권력을 좇는 세상에서 나 혼자 무소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출세를 위해 달려가는 저 거대한 활주로에서 나만 느림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없고 타인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개체는 없고 관계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모두 나를 보지 않고 남만 바라본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의 수가 10억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 매일 접속하는 사람의 수가 그 절반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SNS의 위력을 실감한다. 그런데 최근 미시간 대학 연구팀이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갈구와 의사소통의 욕구가 충족되는 SNS의 현장이 왜 행복의 느낌을 감소시키는 것일까. 놀랍게도 연구팀이 내놓은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인, 귀여운 아기 사진, 그리고 가족끼리의 멋진 여행지에서의 행복한 모습에 그렇지 못한 많은 이들이 박탈감을 느낀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는 ‘군중 속의 고독’을 넘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고독’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중의 행위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가 너무 힘들고 외롭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는 숨기고 남의 이야기만을 하고 남의 행동만을 모방한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다중화하고 우리의 개인적 삶을 낭비한다. 외적 현상에 일희일비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외면한다. 이제 근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논리의 오류에서 벗어나고, 무수한 대중의 외침에서 벗어나 내 안의 소리를 되찾아야 한다. 타인의 오류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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