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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13. 2020

도박, 실패한 인생의 축소판 (1)

도박사의 오류/ 우연에 기대는 환상

도박사의 오류


1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다. 군대는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에게 포탄은 한 번 떨어진 곳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공격이 시작되면 이미 포탄이 떨어진 곳으로 피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같은 곳에 포탄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에 이 말은 사실로 굳어졌다. 포탄이 동일한 장소에 다시 떨어질 확률이 낮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수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포탄의 발사는 모두 개별적인 행동이므로, 포탄이 떨어질 확률은 모든 장소에 동일하다는 것이다. 주사위 놀이에서도 이러한 심리가 작용한다. 여섯 개의 숫자 가운데 한 가지 숫자가 계속 이어지면 그다음에는 다른 숫자가 나올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사위를 던져서 어떤 숫자가 나올 확률은 여섯 개 모두에 동일하다. 따라서 포탄이나 주사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확률의 측면에서 오류이다. 이것을 ‘도박사의 오류’ (Gambler's Fallacy)라고 부른다. 도박사들이 돈을 거는 방식이 이러한 그릇된 믿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과 관련된 우스개가 있다. 확률에 밝은 통계학자, 도박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처음 도박을 한 사람 가운데 카지노에서 돈을 딸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모두 빈털터리가 된다.’이다. 도박은 확률이 아니라 무작위의 요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상호 관련성이 있다고 믿고, 또한 한 범주에 속한 사건들의 전체 확률은 일정한 균형을 이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연에 기대는 환상     

  

조선시대의 민담에 고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고래에게 먹혀 그 뱃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그 안에서 도박판을 벌인다. 옹기장수는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훈수를 둔다. 이 민담은 고래의 거대함을 말하는 일종의 ‘과장된 이야기’에 속한다. 고래가 얼마나 크면 그 뱃속에서 사람들이 살아남아 놀음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고래에 대한 이 이야기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면 내기를 걸고 놀음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힌 내기와 놀음에 대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신들의 내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지혜의 신 아테나가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내기를 건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고, 누구의 선물을 고르느냐에 따라 아테네의 수호신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포세이돈은 바위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을,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선물한다. 아테네 사람들은 올리브 나무를 선택했고 아테나가 내기에서 승리한다. 이렇듯 신화에까지 등장하는 내기는 도박의 원형이다. 둘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과 확률은 도박처럼 언제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확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환상으로 대체한다. 일확천금을 통한 인생역전의 꿈은 도박이 일으키는 환상이다. 그리고 그 환상의 기초는 지극히 불확실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이다. 도박과 우정을 그린 영화 ‘라운더스'(Rounders)의 대사는 도박에 거는 막연한 기대를 표현한다. “하지 않으면 잃는 것도 없지. 하지만 하면 딸 수도 있어.”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포우(Edgar Allen Poe)는 도박에 빠져 부모의 재산을 탕진하고 비참한 삶을 이어가던 자신의 친구 샘플과 그가 아끼던 고양이 이야기를 ‘샤워하는 고양이’라는 단편 소설에 담았다. 그 작품에서 포우는 이렇게 묘사한다. “도박꾼들은 이성을 신뢰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우연에 모든 것을 거는 자들이다. 황금을 거머쥐는 것은 우연에 결부된 행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연에 복종하는 것.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한 일체의 시도는 부질없다.” 포우 역시 평생을 가난 속에서 술과 도박에 빠져 살다가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였다. 도박은 현실에 좌절한 인간이 우연에 기대어 환상을 창조하려는 본능일지 모른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절규’라는 그림은 다리 위에서 공포와 절망에 빠져 절규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의 절박함을 보면서 우리는 지치고 나약한 우리의 내면 그리고 뭉크의 불행했던 삶을 떠올린다. 그리고 뭉크 역시 도박에 빠져 있었음을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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