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의 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Oct 14. 2020

도박, 실패한 인생의 축소판 (2)

파멸에 이르는 쾌감/ 뇌와 마음의 작용 

파멸에 이르는 쾌감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여자와 술과 도박의 수렁에 빠져 살았다. 그는 술과 여자는 자신의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지만 도박에 대한 쾌감은 의지로도, 문학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도박 빚에 시달려야 했고, 그로 인해 감옥을 들락거려야 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원고료를 받아 서둘러 도박 빚을 갚아야 했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구술을 통해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도박 속의 감각 체계에는 문학 속의 상상 체계가 침범도, 구제도, 또 교감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도박은 돈을 딸 때뿐 아니라 돈을 잃을 때에도 쾌감을 준다. 그러나 그 쾌감은 절망과 파멸에 이르는 길일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노름꾼’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단 한 시간 안에 운명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여전히 내일의 도박에 미래를 건다. "내일,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렇게 도박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불확실한 가능성에 기대어 파멸의 길로 향한다. 사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 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에는 도박에 관한 얘기가 빈번히 등장한다. 러시아인들의 기질도 있었겠지만, 유럽의 변방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근대화가 늦었던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풍토도 도박의 확산에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6세 때 마차 정거장에서 즉석 복권을 한 장 산 것이 그를 도박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강과 도스토에프스키

19세의 나이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프랑스 여류작가 사강(Francoise Sagan)은 어린 나이의 성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만과 방탕의 삶을 살았다. 두 차례의 결혼 실패 이후 삭막해진 그녀의 삶은 결국 그녀를 술과 마약, 도박으로 이끌었다. 한 번은 마약 복용 혐의로 법정에 서서 “나는 나를 파멸시킬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스스로를 파멸시킨 마지막 방법은 도박이었다. 집을 저당 잡혀 도박 밑천을 만들고, 하루 밤 사이에 수 억 원에 이르는 인세를 날리기도 하다가 마침내 파산하고 만다. 그녀는 도박을 일종의 정신적 정열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갖고 싶었던 카세트 레코더 하나 살 돈이 없었던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인생을 즐겼다.”라는 공허한 자기변명 속에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삶은 고독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절망적인 고독 앞에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권리’를 행사했는지 모른다. 


뇌와 마음의 작용      

  

도박이 유전적,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도박을 포함한 많은 정신적 중독현상들이 결국에는 뇌의 작용에 기인한다고 한다. 어떤 강렬한 쾌감의 기억이 뇌에 각인되면서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독 단계의 도박은 결국 뇌의 화학적, 신경학적 작용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도박에 중독되는 것도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도박은 여전히 마음의 문제로 회귀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도박에 빠지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변화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중독은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돈을 따게 됨으로써 관심을 갖는 단계(winning phase), 그리고 계속적으로 돈을 잃는 단계(progressive-losing phase), 잃은 돈을 필사적으로 보상하려는 단계(desperate phase), 마지막으로 모든 희망을 버리고 몰락하는 단계(hopeless phase)가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몰락에 이른 한 인생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 심리적 변화와 스스로에 대한 처절한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도박은 우리에게 실패한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다.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이다. 10대의 인터넷 사용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다. 더욱이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은 오늘의 젊은이들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사이버의 세계로 인도한다. 사이버 상의 수많은 게임들이 내기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에 사행성의 조장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버 머니가 돈의 관념을 희석시키고, 사이버 부자와 사이버 가난뱅이를 양산한다. 복권 한 장에 인생 전부가 도박으로 얼룩진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할 때 현대의 우리는 사이버 세계 속에서 수많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박, 실패한 인생의 축소판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