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Oct 15.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57)

사랑이라는 경험-에밀리 디킨슨

He touched me, so I live to know

     by Emily Dickinson(1830-1886)    


He touched me, so I live to know  

That such a day, permitted so,  

I groped upon his breast.  

It was a boundless place to me,  

And silenced, as the awful sea        

Puts minor streams to rest.     

And now, I ’m different from before,  

As if I breathed superior air,  

Or brushed a royal gown;  

My feet, too, that had wandered so,         

My gypsy face transfigured now  

To tenderer renown.      


그가 나를 만지는 순간, 나는 살아나 알게 되죠.

그 날, 그럴 수 있게 된 날,

난 그의 가슴을 더듬었죠.

그곳은 내게는 무한의 장소였어요.

그리곤 침묵했죠. 마치 거대한 바다가

잔물결들을 쉬게 하는 것처럼.    

이제 난 전과는 달라졌어요.

마치 더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왕의 도포를 손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방황했던 내 발도 역시,

집시 같던 내 얼굴도 이제는

더 부드럽게 보이게 됐어요.    

(디킨슨, '그가 나를 만지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면 모든 것이 평화롭지요. 근심도, 슬픔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그 순간에는 망각 속으로 사라집니다. 마치 끝 모를 지평선 저쪽에서 솟아오르는 태양빛의 황홀함에 빠져 자신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도 잃어버린 아이가 되는 것이 사랑에 빠진 우리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릴 언제까지나 사랑 속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열정도 언젠가는 식어버리고, 이따금 미움과 원망으로 바뀌기도 하죠. 왜 사랑은 그렇게 약하게 태어났을까?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덮쳐 한 순간 숨 쉴 수 없는 극한의 정점으로 쳐올렸다가 무의식처럼 깊은 고뇌의 심연으로 빠지게 하는 사랑. 하지만 사랑은 무기력합니다. 시간 앞에서, 의심 안에서, 환상 같은 환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은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엉뚱한 기억과 미련으로 자신을 채색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변하게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죠. 사람은 사랑 이전과 사랑 이후로 나뉘죠. 그것은 경험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지만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런 불안한 여정과도 같은 것이죠. 문득 오래전에 읽은 디킨슨의 또 다른 시가 떠오릅니다.     


널빤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머리 위로 별들을 느꼈지,

발아래로는 바다를.    

다음 발걸음이

나의 마지막 걸음이 될지도 몰라,

불안한 걸음을 내디뎠다.

누군가 경험이라 부르는.  

(디킨슨, '널빤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불안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별과 바다를 느낍니다. 그 찬란함과 거대함을 말이죠. 하지만 조심하세요. 잘못 디디면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심연 속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5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