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의 거의 1/3인 2,500만 명에서 3,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것은 너무도 가혹한 재앙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형벌, 천형(Nemesis)이라고 불렀다. 이후의 유럽은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질병과 가난에 찌든 민중들은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1381년 영국의 농민반란을 이끌었던 존 볼(John Ball)은 그를 따르는 억압받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실을 잣던 때, 누가 양반이었는가?” (When Adam delved and Eve span, who was then a gentleman?)
재앙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그들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삶의 패턴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단계마다 삶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던 것처럼 인류의 생활이 모든 영역에서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전쟁과 역병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자연재해들은 인류에게 스스로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AIDS나 에볼라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을 때 인류는 좀 더 많은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1920년, 1차 세계대전과 1918년에 만연된 인플루엔자에 시달렸던 서구세계는 그 참담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무너졌던 일상을 회복하고, 워렌 G. 하딩(Warren G. Harding, 1865~1923, 미국의 29대 대통령)의 표현대로 ‘정상으로의 회귀’(Return to Normal)를 갈구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날 인류는 COVID-19의 습격으로 또다시 재앙 앞에 무기력했던 과거로 회귀한다.
21세기의 인류는 마치 세계대전을 겪은 듯, 찰나의 순간에 산업혁명을 경험한 듯, 변화의 거센 격랑 속에 빨려 들고 있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자문한다: 우리는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또 다른 바이러스의 침입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COVID-19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디지털 혁명을 새삼 깨닫게 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e-러닝 수업이 진행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한 상품 거래, 택배 서비스의 급증 등으로 어느 때보다도 생활 속에서의 변화를 실감한다. 이제 ‘시간의 사치’(luxury of time)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과거 1~3년에 걸친 단계적 디지털화 전략을 며칠 또는 몇 주의 프로젝트로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가 제시했던 3F(Feeling: 감성, Female: 여성, Fiction: 상상력)는 이제 또 다른 F(Fastness: 신속)를 첨가하게 되었다. 누구도 한가하게 상황을 지켜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주저앉아 과거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역사가 알려주듯 그러한 변화는 항상 일시적이지는 않다. 위기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믿음이나 행동을 새롭게 형성한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봉건주의와 농노제를 종식시켰으며, 2차 세계대전은 여성의 노동 참여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쳤다. 많은 남성인력이 전쟁에 참가하게 됨으로써 여성들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법적 장벽들이 낮춰졌다. 전쟁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되었고 여성 노동인력의 참여는 가속화된다. 9/11 테러 역시 전 세계적으로 교통 및 안보 정책의 변화를 초래했다. 또한 안전을 위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유보하는 사회적 태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그 결과 시민들은 집단의 안전을 위해 더 높은 수준의 검사와 감시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회적 위기는 또한 소비 패턴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2003년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SARS)는 쇼핑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해, 온라인 구매에 의존했다. 그 위기는 단기적이었으나 많은 소비자들은 이후에도 e-커머스를 계속 이용했고, 그로써 알리바바나 다른 디지털 대기업이 등장하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현재의 위기가 국가간 상호의존성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적 경향을 가속화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각국에서 벌이는 COVID-19의 대응은 국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특히 외국인의 유입 차단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는 사이버 방어체계에 대한 보강에 중점이 두어지고 있으며, 코비드의 대응에 따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달라질 수 있는 것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일본 아베 총리의 사임은 개인적 건강 문제도 있으나 초기 방역 실패에 따른 민심 이반이 배경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Accelerating digital innovation| Deloitte Insights www2.deloitte.com
재택근무의 확대, 웨비나(webinar)나 화상 회의, 직장 내 위생 상태에 대한 관심,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안정성의 제고 등, 현 상황은 다양한 방면에서 근로 상황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소비 패턴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식료품이나 의약품의 구매, 온라인 쇼핑 등은 위기 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으나 상대적으로 관광, 공연 관람, 의류 구입은 상당한 폭으로 감소하였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위기 이후에도 지속되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으나, 소비 경향의 변화는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에 맞추어 위기 이후에도 상당 부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 깃허브(GitHub)의 CEO인 냇 프리드만(Nat Friedman)은 새로이 도래될 세계에서 직장은 근로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접속, 공동체, 생태계, 메이커-스페이스의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도시 중심에서 교외나 시골로, 양복과 넥타이가 아닌 조명, 마이크, 웹캠과 배경화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냇 프리드만에 의하면 완전고용에 대한 이상은 높은 실업률과 그에 따른 사회적 소요로, 분야 별 10년 주기로 활성화되던 시장은 완전한 승자와 패자로, 기업의 부채는 국가채무와 높은 세금으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적 경향으로, 세계화는 민족주의와 자급자족으로 변화할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의 격차, 인종적-교육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어 갈 것이다.
COVID-19는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뉴 노멀’ 즉, 새로운 기준을 찾아 나선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위협을 최소화하여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이제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즉각 새로운 기준에 적응해야 한다. ‘가장 적합한 자’의 시대일 뿐 아니라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자’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