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던바는 미국의 흑인 시인입니다. 그래서 위의 시는 검은 피부를 가면처럼 쓰고 백인들의 세상에서 고통 받는 흑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는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웃는 척 하지만 그 웃음 뒤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픔과 슬픔을 감추고 있는지요. 그리고 애써 우리의 추함과 어리석음을 가리려고 또 다시 가면을 씁니다.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사람은 있을까요? 굳이 그것을 바랄 일은 아닙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사는 것이 힘들 테니까요. 가끔 스스로에게 자문을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가면을 보는 것이 아닐까? 영국의 행위예술가 겸 낙서예술가인 뱅크시(Banksy; 가명)는 특유의 냉소함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고,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게 하고 싶으면, 가면을 써야 한다. 그리고 정직해지고 싶으면, 거짓된 삶을 살아야 한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린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고 있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서 가면을 선택하는 겁니다. 그렇게 무언가 사회 속에 역할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는 거죠. 아무 것도 아닌 내 속의 진짜 나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정 나답게 정직하게 살려 해도 아무도 그걸 보아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는 거죠. 그래서 결국 거짓된 삶을 계속 살 수 밖에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가면을 쓰고 있으면, 그 밑에 있는 자신이 누군지를 잊고 말 것이다.” 영국 작가 앨런 무어(Alan Moore)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