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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23.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60)

너무 오래 쓰면 가면 아래 당신을 잊게 될지 모릅니다.

We Wear the Mask  

By Paul Laurence Dunbar      


We wear the mask that grins and lies,

It hides our cheeks and shades our eyes,—

This debt we pay to human guile;

With torn and bleeding hearts we smile,

And mouth with myriad subtleties.    

Why should the world be over-wise,

In counting all our tears and sighs?

Nay, let them only see us, while

    We wear the mask.    

We smile, but, O great Christ, our cries

To thee from tortured souls arise.

We sing, but oh the clay is vile

Beneath our feet, and long the mile;

But let the world dream otherwise,

    We wear the mask!    


우리는 웃으며 거짓을 말하는 가면을 쓴다.

그것으로 뺨을 덮고 눈을 가린다.

그것은 인간의 교활함에 치러야 할 대가이다.

찢어져 피 흘리는 가슴으로 미소 짓고,

수많은 비열한 말들을 내뱉는다.     

왜 세상이 굳이

우리의 눈물과 한숨을 헤아릴 것인가?

그저 바라볼 뿐이지

우리가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     

우리는 미소 짓는다. 하지만 고통받는 영혼이 

신께 보내는 외침이 터져나온다.

우리는 노래한다. 발아래  

흙은 더럽고, 길은 멀어도.

하지만 세상은 달리 꿈꾼다.

우리가 가면을 쓰고 있으니!

(미국 시인 폴 던바, ‘우리는 가면을 쓰고 있다’)    


폴 던바는 미국의 흑인 시인입니다. 그래서 위의 시는 검은 피부를 가면처럼 쓰고 백인들의 세상에서 고통 받는 흑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는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웃는 척 하지만 그 웃음 뒤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픔과 슬픔을 감추고 있는지요. 그리고 애써 우리의 추함과 어리석음을 가리려고 또 다시 가면을 씁니다.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사람은 있을까요? 굳이 그것을 바랄 일은 아닙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사는 것이 힘들 테니까요. 가끔 스스로에게 자문을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가면을 보는 것이 아닐까? 영국의 행위예술가 겸 낙서예술가인 뱅크시(Banksy; 가명)는 특유의 냉소함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고,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게 하고 싶으면, 가면을 써야 다. 그리고 정직해지고 싶으면, 거짓된 삶을 살아야 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린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고 있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서 가면을 선택하는 겁니다. 그렇게 무언가 사회 속에 역할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는 거죠. 아무 것도 아닌 내 속의 진짜 나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정 나답게 정직하게 살려 해도 아무도 그걸 보아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는 거죠. 그래서 결국 거짓된 삶을 계속 살 수 밖에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가면을 쓰고 있으면, 그 밑에 있는 자신이 누군지를 잊고 말 것이다.”   영국 작가 앨런 무어(Alan Moore)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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