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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26.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61)

잊지 말아야 합니다.

Flanders Fields

       by John McCrae(1872-1918)    


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 blow

Between the crosses, row on row,

That mark our place; and in the sky

The larks, still bravely singing, fly

Scarce heard amid the guns below.    


We are the Dead. Short days ago

We lived, felt dawn, saw sunset glow,

Loved and were loved, and now we lie

In Flanders fields.    


Take up our quarrel with the foe:

To you from failing hands we throw

The torch; be yours to hold it high.

If ye break faith with us who die

We shall not sleep, though poppies grow

In Flanders fields.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이 피어난다.

우리가 누워있는 자리를 표시하는

십자가들 사이로 열을 맞추어: 그리고 하늘에는

종달새가 여전히 소리 높여 노래하며 날지만

 아래 총성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죽은 자이다. 며칠 전만 해도

우린 살아, 새벽을 느끼고, 석양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그리고 이제 누워있다.

플랑드르 들판에.      


적과의 싸움을 거두라.

스러지는 손으로 그대에게 던진다.

그 횃불을; 그대의 손으로 그것을 높이 치켜올려라.

만일 그대, 죽은 우리와의 믿음을 끊어버리면

우리는 잠들지 못하리라.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이 자라나도.

(1차 대전에 참전한 캐나다의 의사이자 교사 존 맥크레이 ‘플랑드르 들판’)   


 


그대는 왜 잊어버리는가. 슬픈 과거는 잊어도 좋다. 하지만 그대의 오늘을 만들어 준 그 수많은 사람들, 장소들, 시간들을 어찌 그리 쉽게 잊어버리는가. 정치꾼들은 꽃잎처럼 흩어져간 젊은 영혼들이 지켜온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가. 한 줌도 안 되는 소인배들이 자만과 허위와 탐욕으로 가득한 얼굴을 한 채 쓰레기 같은 어휘를 뱉어내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배우긴 했어도 아는 것 없는 저 그림자 같은 지식인들의 위선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자신만이 옳다고, 남들은 틀렸다고 쉰 소리로 웅얼거리는 저 허상 같은 스크린 속의 ‘관종’들은 또 무엇인가. ‘얼굴 책’ 위에 새겨지는 가증스러운 표정들, 남들의 고통쯤은 멀리서 들리는 벌레 소리로 치부하는 무표정한 가면들,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그러는 사이에 가족을 위해 밤낮을 뛰어다니던 젊은 아빠는 과로로 죽고, 가난한 청년은 끼니도 거른 채 건물 난간에서 떨어져 죽고,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어린것들은 맞아 죽고, 우리의 일상은 왜 이렇듯 야만스러운 전장이 되고 있는가.    


이제 그들이 던지는 횃불을 집어 들 자는 더 이상 없는가. 그들이 누워있는 자리에 피어난 양귀비의 핏빛 절규를 들어줄 자는 이제 없는가. 그들은 죽은 자들이 아니다. 그대들의 목소리를, 미소를, 위로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그대의 이웃들이다. 그대가 그들을 사랑했을까. 그들이 그대를 사랑했을까. 그들이 그대에게 준, 그대가 그들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보이지 않아도 그대들 곁에 있는 그대들의 한숨이며, 몸짓이다. 이제 제발 그들을 잠들게 하라. 무덤가에 피어난 양귀비를 한 번쯤은 바라보아주라. 종달새의 처연한 울음에 잠시라도 귀 기울여주라. 보이지 않는 적들과 힘겹게 싸우는 그들에게 말하라. 결코 그들의 바람에 등 돌리지 않겠다고. 한 번은 살만한 사람들과 살만한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다. 뜻 없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함께 살아갑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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