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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14. 2020

풀, 어린 시절의 추억

바람에 누운 풀들이 웁니다.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Grasses 

      by Kim, Su-young    


Grasses are lying down.

Fluttered by the rain-bearing wind from the east

Grasses lied and cried at last. 

Crying more for a gloomy day    


They lied down again.     


Grasses are lying down

Faster than the wind,

Crying faster than the wind,

Rising earlier than the wind.    


The day is gloomy and grasses are lying down

To the ankle

Beneath the foot, 

Lying later than the wind, but

Rising earlier than the wind 

Crying later than the wind, but 

Laughing earlier than the wind.

The day is gloomy and grass roots are lying down.   

(Translated by Choi)   


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어보셨나요? 바람에 풀이 누우면 풀냄새가 멀리까지 퍼집니다. 그 소리와 냄새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깨웁니다. 풀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많았죠. 풀로 반지도 만들고, 풀떼기 놀이도하고, 풀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했죠. 술래잡기를 하다 풀밭에 누워 잠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다 집으로 가버렸지만, 아직은 하늘이 파래서 무섭지는 않았어요. 바람이 잦아들면 누웠던 풀들이 일어서죠. 작은 우리들은 키 자란 풀들에 발이 빠지기도 했어요. 어머니에게 꾸중이라도 들은 날에는 풀들도 같이 울어주는 듯 했지요. 흐린 날에는 풀밭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비 냄새를 담은 바람이 불면 풀밭은 너무 고요했죠. 하늘의 검은 구름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면서도 그 풀밭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밝은 내일에 다시 돌아와야 할 테니까요. 다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겠지요. 내게는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그 넓은 풀밭을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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