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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13. 2020

선택하는 행복

세 가지 행복: 서로 그리워하고, 마주 보고, 자기를 주는 것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맹목적인 행복의 추구가 오히려 불행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행복을 성공과 동일 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는 한, 그 어느 것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상태이다. 얻고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깨닫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에피쿠로스 학파의 표현을 빌리면 행복은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아타락시아(ataraxia; 마음의 평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세속적 성공, 물질적 풍요 등을 넘어서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미국의 개신교 목사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은 '최고의 삶‘(Your Best Life Now)에서 행복은 선택이고 결정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바깥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기를 선택하고 결정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행복을 좇지 않고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메텔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파랑새는 머리맡 새장 속에 있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포기와 희망    

  

“행복의 비결은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철강 왕 카네기(Andrew Carnegie)의 말이다. 물질에 대한 탐욕을 포기한 사람은 행복하다. 이기적인 사랑의 정염을 버린 사람은 행복하다. 성공에 대한 집념을 포기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것은 수동적이거나 체념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욕심, 지나친 증오, 불필요한 걱정을 포기할 수 있다면 행복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버트란트 러셀은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에서 염세적 세계관, 경쟁심,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공포 등이 불

행한 느낌을 가져오는 것이라 지적한다. 행복은 불행을 야기하는 부정적 요소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내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 그 어떤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 프랑스의 사상가 알랭(Alain)은 인간은 행복하게 될 의무가 있으며, “염세주의는 기분에서 오고 낙천주의는 의지에서 온다.”라고 말한다. 인생을 고해라고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한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을 ‘일과 사랑과 희망’이라고 말했다.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갖는 것. 그것은 행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끄는 힘일 것이다.       


행복 그리고 사람    

  

19세기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Carl Hilty)는 자신의 ‘행복론’에서 사람에게는 세 가지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마주 보고, 서로 자기를 주는 것“ 결국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존중에서 얻어진다. 이는 톨스토이(Leo Tolstoy)의 인생관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세 개의 의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 톨스토이는 스스로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바로 지금,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 내 옆의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 “ 행복은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에 달려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행복의 길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소홀했던 기억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고, 그리고 내가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느낌, 그를 통해 내 삶이 더 가치 있는 것이 되는 순간, 행복은 미풍처럼 감미롭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돈과 성공 그리고 행복지수    

  

어떠한 삶이 행복한 삶일까? 부유함? 물질적 풍요로움이 행복감의 중요한 요소가 됨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행복감을 증가시키기보다는 가난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2010년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 발표에 따르면 행복감을 느끼는 유전자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즉 어떤 수준에서 행복감을 느끼는가는 서로 차이가 난다는 얘기이다. 미국인의 경우, 소득 수준 2 만 불까지는 행복감이 상승했지만, 그 이후로는 행복감이 둔화되었다고 한다. 돈이 행복을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최근의 언론보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보도에 따르면, 사진 공유 사이트인 인스타그램이 1억 여 개의 미소 사진을 분석한 결과 가장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는 브라질이라고 발표했다. 상위 10위에 오른 나라들은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니카라과, 콜롬비아 등 모두 남미 국가들이었다. 서유럽 국가들보다는 동유럽 국가의 사람들이 더 행복했다. 가장 낮은 순위는 일본이 차지했고, 바로 그 위에 쿠웨이트와 한국이 위치했다. 미국은 33위, 영국은 62위, 프랑스는 75위였던 반면 마케도니아와 몰도바가 각각 11위, 16위를 차지했다. 돈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한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미소를 분석한 결과도 흥미롭다. 물론 금메달을 차지한 챔피언의 미소가 가장 행복해 보였지만 은메달과 동메달의 경우는 행복지수가 서로 바뀌었다.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 보다 더 행복한 미소를 지은 것이다. 2위는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아쉬움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냈고, 3위는 메달 권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성공의 순위도 행복을 정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버드대학의 숀 에이커(Shawn Achor) 교수는 그의 ‘행복이란 장점’(The Happiness Advantage)에서 “성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성공은 행복감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한 번의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의 욕구를 불러일으켜 결국 성공에 대한 스트레스를 낳게 된다. 즉 행복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원하는 것만이 달라져 있을 뿐 여전히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룬 부와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행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듯 성공이나 부가 늘어도 행복감이 증가되지 못하는 것을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고 부른다. 부와 성공을 기준으로 행복과 불행을 섣불리 정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행복을 위한 삶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는 인생이 힘드는 것은 “난 성공해야 하고, 누구나 내게 잘 대해주어야 하고, 세상은 반드시 살기 쉬어야 한다. “는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한,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엘리스의 세 가지 ‘머스트’(Must)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행복한 삶의 길을 보여준다. 첫째, 성공에 대한 집념 대신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연금술사'(The Alchemist)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세 인부에게 던진 질문.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죠?” 한 인부가 대답했다. “보면 모르쇼? 돌을 치우고 있잖아요.” 두 번째 인부. “보면 몰라요? 돈을 벌고 있잖소.” 마지막 세 번째 인부는 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시겠어요? 교회를 다시 짓고 있잖아요.” 일을 위한 일, 돈을 위한 일. 그것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을 향한 첫걸음이다. 둘째, 자신과 남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만이 아니라, 결의이고 판단이며 약속이다.”라고 주장한다. 사랑은 줌으로써 받는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줌으로써 받는 삶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셋째,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그 많은 고통, 배신감, 외로움, 좌절들은 우리를 불행에 빠뜨린다. 삶을 긍정적으로 산다는 것은 그러한 어려움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에 맞서,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극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고, 자신감을 키워주며, 내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이다.     

  

나는 행복한가? 몽테뉴가 말했듯 모든 행복과 불행은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다. 생각만 바꾼다면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 결국 톨스토이의 말처럼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슬픔도 있고, 아픔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행복은 순간에 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빛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주는 위안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바라보는 저녁놀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라. 그렇게 마음속에 행복을 담으라.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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