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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23. 2020

살다가 보면

이근배,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떠나보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While living

      by Lee, Keun-bae     


While living,

We happen to stumble

Where we don’t.    


We happen to speak of love

Where we don’t    


We happen to shed tears

Where we don’t    


While living

We happen to let somebody go

Not to love

the one to love.     


After letting go of something

That should be left

We happen to live

Like a beast

Trapped in darkness    


While living    


그런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참 마음과 달리 한 행동과 말, 흘리지 말라야 할 눈물, 보내지 말았어야 할 사람, 장소,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모르지요. 흘러가고 난 뒤에야 그것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잊고, 그리워할 줄 알면서도 보내고, 암흑에 빠져 미친 듯 괴로워할 줄 알면서 놓아준 기억들... 살다 보니 깨닫게 된 후회와 뉘우침으로 휘청대듯 떠나온 길들이 이젠 아득한 추억 속에 묻히고 맙니다.     


넘어지지 않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왜 그곳에서 비틀거릴까요? 그게 삶이기 때문이겠죠. 사막 같은 인생길에서 모래바람을 만나도 끄떡없던 내가 이제 서늘히 불어오는 작은 가을바람에 흔들립니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애쓴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눈물짓는 것을 알고는 가슴 아파하는 것이 인생일 뿐이지요. 왜 난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던져 그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을까요? 그리고 왜 난 보내야 했는지. 사는 것이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군요. 저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측연처럼 있어도 없는 것처럼 침묵 속에 외로워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떠오르지 않아도 되는 때에 물 위로 올라오겠죠. 그래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목 빼어 기다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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