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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30. 2020

기억과 망각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면 그것은 현재의 기억이 된다.

“기억하는 것은 사는 것이다.”(To remember is to live.) 인간은 기억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확인한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의 시간은 의미 없이 명멸할 뿐이다. 그래서 기억을 생명이라 한다. 과거의 망각은 현실의 죽음을 뜻한다. 기억은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다. 우리는 기억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켰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왔으며, 새로운 각성과 출발을 모색할 수 있었다. 인간의 기억은 삶의 원천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다.    


집착과 정화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가난한 어머니의 밥상이 지금의 풍성한 식탁보다 맛있고, 젊은 시절의 사랑은 더 애틋하고 따뜻하다. 그렇게 좋은 것들만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속성이다. 그래서 낭만주의는 과거를 동경하고, 현실을 회피한다. 기억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과거 지향적이고 현실 회피적인 경향이 있다.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여주인공 블랑쉬는 이렇게 말한다. “난 마술이 좋아요. 사실주의는 싫어요!”(I like magic. I don't like realism!) 그래서 그녀는 늘 불빛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끝없는 향수에 빠져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에만 의존한다. 일본 속담에 여자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세 가지 경우가 나온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여자. 불 빛 아래의 여자, 그리고 함께 나눠 쓴 우산 밑의 여자. 이런 상황에서 기억되는 여자는 더 신비롭고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그 모습이 당신의 판단을 흐릴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망각의 세계로 이전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얘기하는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한다. 그래서 정신병을 치료할 때, 억눌린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그 아픈 기억에 맞서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망각은 기억의 정화이다. 20세기의 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영국의 시인 엘리엇(T. S. Eliot)은 ‘황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놓는/ 4월은 잔인한 달.” 과학문명의 어두운 그림자에 싸인 20세기를 잔인한 시대로 묘사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망각의 눈(雪)으로 덮인 겨울은 따뜻했네.” 기억은 우리를 역동하게 하고 망각은 우리를 정화한다. 그렇게 기억과 망각은 과거와 현재의 삶을 구성한다.     


감성과 기억의 조각들     

  

기억은 어떻게 저장되고 수정되는가.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은 현대 과학의 미스터리이다. 뇌 과학과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간의 기억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억이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수집된다는 사실이다. 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꽃잎, 아스라이 들리는 기차의 기적 소리, 어머니의 화장품 냄새, 부드러운 벨벳의 느낌, 그리고 입안에 향긋이 퍼지던 박하사탕의 달콤함. 그렇게 오감을 통해 느낌이 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을 통해 그 기억들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확장되고 수정된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정겨운 종소리가, 우리의 기억 저 편에 있는 과거의 감각들을 일깨우고 새로운 기억으로 추가된다. 그렇게 기억은 감각과 함께 기억되고 의식과 함께 변화한다.

  

프랑스의 생(生)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순수 기억’(pure memory)의 개념을 제시한다. 우리의 기억은 단지 과거의 상황, 물질에 대한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해온 모든 기억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작용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각인되는 현재의 기억은 결국 우리의 삶 전체가 지금껏 형성해온 기억의 집합인 것이다. 그것이 베르그송의 순수 기억이다. 수많은 단편적 기억의 조합들, 우리는 하나의 경험과 그것의 기억이 단순한 과거만을 나타내지 않음을 깨닫는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단편 ‘키스’(Kiss)는 순간의 기억이 어떻게 과거의 경험 전부와 관련이 되고 현재를 넘어서는 삶과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제정 러시아의 젊은 장교 리아보비치는 다른 장교들과 함께 한 귀족의 장원에 초대를 받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무도회가 시작되자 리아보비치는 홀로 장원의 여기저기를 서성인다. 우연히 불이 꺼진 한 방에 들어선 순간, 누군가가 그에게 달려와 날카로운 키스를 퍼붓는다. 아, 그것은 애인을 기다리던 여인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연인이 아닌 것을 알고는 놀라움과 당혹감 속에서 달아난다. 그 순간의 키스, 순간의 느낌은 부대로 돌아온 젊은 장교의 기억 속에 온전히 되살아난다. 그 얼굴도 모르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리아보비치의 기억은 순간의 기억이 아니다. 그의 삶 속에 간절히 기다려 온 애타는 사랑의 기억들이 그 순간에 되살아난 것이다. 그 차가운 키스처럼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여 지속되는 감각이다.                     


망각의 역현상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 나오는 70대 후반의 로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주 내 마음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기억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세월에 따라 모든 것이 망각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우리의 기억력은 감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억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다우어 드라이스마(Douwe Draaisma)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이라는 책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기억이 있다고 말한다. 심리학에서 ‘망각의 역현상’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오래된 일이 더 잘 기억될 수 있고, 그 기억은 기억력이 감퇴하는 나이에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노인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과연 사실일까? 불확실한 기억에 의지한 향수의 표현이 아닐까? 기억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일을 원래의 모습대로 수시로 기억 속에 저장한다면 맨 처음의 기억이 마지막 기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즉 마음속에 간직한 그 추억 속의 기억을 수시로 꺼내보면, 그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보다 강한 것이 추억의 힘이다. 기억의 불확실함, 망각에 대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추억 속에 존재하는 향수는 새로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추억은 놓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붙드는 힘이다. 가끔씩 낡은 앨범을 뒤지듯 그 기억의 주머니를 풀고 추억의 조각들을 꺼내보는 것도 삶의 즐거움이 아닐까. 나이를 먹어 기억력이 쇠퇴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기억은 옷장에 넣어둔 물건을 찾아내는 능력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과거의 일들을 새로운 추억으로 변화시키는 마술과도 같은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중한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기억을 찾으며 살기 위해서이다.    


기억과 망각 사이        

  

우리의 삶은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가는 외줄 타기와 같다. 마음속에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을 지우려 해서 지울 수 있을까? 잊혀진 많은 것들이, 굳이 되돌리려 해서 기억 속에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기억함으로써 행복한 많은 순간들, 그리고 잊어야 할 수많은 슬픔, 고통과 번민.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망각함으로써 살아간다. 니체(Nietzsche)는 망각을 인간의 본능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억압적인 기억을 저지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적극적인 능력이다. 인간은 망각을 통해 힘든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체는 그 반대의 능력에 대해서도 말한다. 기억의 능력이다. 니체는 인간을 ‘약속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을 주장한다. 약속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의 행동과 사고가 예측 가능하고, 어떤 기준과 규칙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망각은 인간을 무책임과 불확실성에 빠뜨리기 쉽다. 이런 이유로 기억의 의지가 망각의 본성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지키는 것이 기억의 힘이다. 기억과 망각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기억은 망각을 통해 순화되고 망각은 기억을 통해 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과 망각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삶의 또 다른 지혜이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진이 특정한 파동으로 뇌신경을 자극해 기억을 지우고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기억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방법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과학은 언제나 이렇듯 삶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성찰을 조롱한다. 과학의 진보가 초래하는 인류의 딜레마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기억만 지우면 인간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기억을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만들어내고, 컴퓨터 자판을 클릭하여 지워버릴 수 있다면 인간의 마음은 이제 컴퓨터 화면에 다름 아니게 되는 것 아닌가. 우리의 마음에 행복하고 좋은 기억만 남게 하는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우울하고 힘든 기억들도 받아들이고 느껴야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기억이 주는 과거에 대한 반성, 자신에 대한 성찰마저도 인간은 이제 과학의 힘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한 알의 약으로 식욕을 억제할 수는 있어도 미각을 충족하는 즐거움은 음식을 먹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기억과 망각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으로 우리의 삶을 유지한다. 기억하고 망각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의 삶을 계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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