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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9. 2020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기다리며 낡아가는 나룻배' 같은 삶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A Ferry and a Passenger

               by Han, Yong-un    


I am a ferry

You are a passenger.    


You trample on me with your dirty shoes.

I cross the water with you in my arms.

When embracing you, I ford rapids, deep or shallow.     


If you don’t come, I keep on waiting for you

Night and Day 

Despite the wind, rain and snow.    

When you are carried to the other end of the water, you don’t turn around and see me.

But I know you will come again someday.

Waiting for you, I am wearing out day after day.      


I am a ferry

You are a passenger.     

(Translated by Choi)


기다림은 희생입니다. 막연히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고통입니다. 기다림 끝에 만난 그것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가슴에 끌어안고 여울을 건넙니다. 흙발로 짓밟혀도 기쁜 마음으로 그것과 동행합니다. 그러나 그 만남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잠시의 기대와 희망을 뒤로하고 그것은 또다시 떠나갑니다. 이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언젠가는 올 것을 믿지만 하루하루 나는 늙어갑니다. 사랑도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의 기다림은 영원하지만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기다리는 것은 희생입니다. 나의 삶을 소모하고, 내 영혼을 갈아 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시지 않는 아픔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기다리는 것은 그것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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