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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0. 2020

다시 읽는 '님의 침묵'

한용운,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

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Silence of Love 

         by Han, Yong-un     


My Love has gone. Ah, my sweet love has gone.

Breaking the blue light of the mountain, 

Walking through the narrow path toward the maple forest

My love has gone at last.

Our solemn vow, once shining like golden flowers,

Has been blown away as a cold dust by a breath of breeze.    


The sharp memory of the first kiss, turning the direction of my fate,

Has disappeared, stepping backwards.

Your sweet voice deafened me, your lovely face blinded me.

As man-mde love is destined to end,

I was afraid and worried about good-bye when we first met.

But the unexpected parting surprisingly filled me with newly-bursting sadness.       


To make parting a source of useless tears  

Is to break love on my own.

That’s why I poured the power of sorrow on the top of my hope.

Just as we are worried about good-bye when we meet,

So I believe we will meet again when we leave. 


Ah, my love has gone but I didn’t let it go.

Song of love, yielding to its melody, vibrates in silence of love.  

(Translated by Choi)    


나는 결코 보내지 않았던 그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돌아서 가는 그의 뒷모습이 푸른 숲으로 향하는 좁은 샛길 저편으로 멀어져 갈 때 사랑의 약속들도 내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아스라한 기억 너머로 사라진 내 젊음, 내 추억, 그리고 내 사랑... 하지만 울지 않겠습니다. 떠나갈 것을 모르지 않았고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슬픔의 자리를 새로운 희망으로 채우고, 한 때 같이 불렀던 그 노래를 침묵 속에서 다시 불러봅니다.    

세상이 모두 내게서 돌아앉은 느낌입니다.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는 시간을 망연히 바라봅니다. 즐거웠던 그 시간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요? 세상은 예전으로 돌아와도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치 나무 구멍 속에 빠져 새로운 태양이 비춰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다람쥐가 된 기분입니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은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지나온 시간의 자취만을 세며 자꾸 거꾸로 흘러가는 이 기분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요? 아니 끝날 수나 있을까요? 침묵 속에 보내는 이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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