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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9. 2020

힙합, 21세기의 음악

새로운 문화적 현상 읽기

오늘날 랩 음악과 동의어가 되어있는 ‘힙합’은 1970년대의 광범위한 문화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그 용어가 퍼지기 시작한 초기에 힙합은 음악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 패션, 무용과 철학 전반에 적용되는 용어였다. 힙합 혹은 힙-합은 1970년대 초반 급속히 인구구성이 변화되던 미국 뉴욕시 브룽크스 지역에서 시작된 문화예술 운동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 많은 백인 중산층들은 도시를 떠나 교외로 이동한다. 도시에 남겨진(혹은 도시로 이주해 온) 흑인들이나 라틴계 주민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지역에 대한 예산이 삭감되고 자원은 부유한 백인 거주 지역에 집중되었다. 경제적인 기회가 결여되고, 범죄의 증가, 빈곤율의 상승에 직면해 브룽크스와 주변 지역의 젊은이들은 그들 자신만의 문화적 표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들의 표현 형태들의 합쳐져 오늘날 힙합의 주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힙합에는 네 가지 주요한 요소가 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이 요소들은 오늘날까지 힙합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디제이잉(Deejaying), 래핑(Rapping), 그라피티(Graffiti: ‘graf’ 혹은 ‘writing’)와 브레이크댄싱(Break Dancing)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요소는 거대한 문화운동으로서의 힙합을 표시하는 기표들이다. 한편 힙합은 전형적으로 세 가지 단계를 거쳐 발전해왔다: 구세대 힙합, 신세대 힙합 그리고 21세기 힙합이다.  

구세대 힙합은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 이루어진다. 최초의 주요한 힙합 디제이는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였다. 퍼커션의 비트와 인기 있는 댄스곡을 섞어, 쿨 허크는 드럼 비트나 레코드판의 스크래치와 같은 힙합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쿨 허크와 그의 동료들의 영향을 받아 힙합 디제이들은 턴테이블을 이용한 새로운 기법들을 개발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턴테이블 위에 바늘을 떨어뜨리거나 레코드판을 긁음으로써 만들어내는 음향이었다. 쿨 허크는 또한 그리오(griot)라 불리는 서아프리카 전승 시인들의 전통, 토킹 블루스(talking blues: 엄격한 리듬과 자유로운 멜로디에 맞춰 말하는 읊조리는 포크와 컨츄리 음악의 한 형태), 흑인 시인들의 시를 활용한 래핑을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구세대 힙합의 끝 무렵에 힙합은 전국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슈거힐 갱(The Sugarhill Gang)의 앨범 ‘래퍼의 즐거움’(Rapper’s Delight, 1979)이 음악 차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힙합 장르의 새로운 뮤지션, 아티스트들의 시대를 열었고, 한편으로 전 세계에 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디제이 쿨 허크와 슈거힐 갱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힙합은 신세대 힙합의 단계로 들어선다. 신세대 힙합을 선도한 뮤지션들의 이름은 최근의 힙합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런-디엠씨(Run-D.M.C), LL 쿨 J(LL Cool J),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이들은 오늘의 힙합을 만들어낸 뮤지션들이다. 런-디엠씨는 MTV 공연을 통해 힙합을 대중들에게 알렸고, 비스티 보이스는 디지털 샘플링을 통해 디제이잉을 더욱 발전시켰다. LL. 쿨 J와 퍼블릭 에너미는 랩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LL. 쿨 J는 힙합에 낭만적인 주제를 도입했고, 퍼블릭 에너미는 랩을 이용해 정치적 이념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런-디엠씨와 LL 쿨 J
비스티 보이스와 퍼블릭 에너미

신세대 힙합 시기에 성년이 되었던 아티스트들 중 퀸 라티파(Queen Latifah)는 솔트 앤 페파(Salt-n-Pepa)와 더불어 여성을 힙합의 장르에 참여시켰으며, 윌 스미스(Will Smith), M.C. 해머(M.C. Hammer) 등은 힙합 음악을 한층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퀸 라타파와 솔트 앤 페파
윌 스미스와 M.C. 해머

힙합이 인기를 얻어가자 지역적 뿌리를 넘어서 팽창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1989년 캘리포니아 출신 6인조 힙합 그룹 N.W.A(Niggaz Wit Attitudes, 행동하는 흑인들)의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은 뉴욕시 이외의 지역에서 발매된 가장 뛰어난 힙합 앨범이 되었다. 이로써 동부 해안과 서부 해안으로 나뉜 힙합은 전면적인 디스 경쟁을 벌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대부였던 투팍 샤커(Tupac Shakur)와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창시자라 불린 노토리어스 B.I.G(Notorious B.I.G)의 암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N.W.A와 투팍 샤커 그리고 노토리어스 B.I.G

이러한 분열의 잿더미 속에서 1990년대 후반의 힙합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의 뮤지션들인 우 탕 클랜(Wu-Tang Clan), 푸지스(Fugees) 그리고 디디(Diddy) 등은 새로운 차원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 시기 힙합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 서울, 도쿄, 케이프 타운, 런던, 파리와 같은 도시에서도 새로운 힙합 아티스트와 힙합 팬들이 등장한다. 20세기 말에는 힙합이 미국 내에서는 가장 잘 팔리는 음악 장르가 되었던 것이다.         

우 탕 클랜, 푸지스, 디디

21세기는 음악시장이 어려운 시기였다. 스트리밍 서비스(streaming service; 음악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다운로드 서비스와 달리 원하는 곡을 음원을 통해 들려주는 방식)의 도입으로 힙합을 포함해 음반 산업 전부가 위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음악 전달 방식의 변화에 따른 재정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힙합은 여전히 그 탁월함을 과시하며 모든 장르의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 힙합은 웨스트-이스트코스트의 분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힙합의 새로운 진원지들이 뉴올리언스, 애틀랜타, 휴스턴, 디트로이트 등 미국 전역의 도시들에서 등장하였다. 힙합을 규정하던 네 가지 요소에서 벗어나 힙합 아티스트들은 무용에서 패션, 심지어 정치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의 선거운동에서 카카오 프렌즈의 캐릭터로 힙합에 빠진 제이지(Jay-G)를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하였다. 21세기 음악 산업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심장의 박동과도 같은 리듬, 사회와 인간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와 함께 힙합은 계속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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