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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1. 2020

역병, 전쟁과 폭풍의 은유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전염병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을 전쟁에 비유한다. 사실 문학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전쟁과 질병을 연결시켜왔었다. 그것은 전쟁이 질병의 확산에 기여한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싸우는 순간 자신들이 잔혹한 전쟁터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중세의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사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기에 사람들은 전염병에 대해 전쟁보다 더 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1797년에 나온 한 의학 관련 소책자에 등장하는 토머스 트로터(Thomas Trotter)라는 의사는 질병이 ‘작은 동물’에 의해 전파된다는 생각을 비웃었다. 그렇게 인류는 무지했었다.       


전염병에 대한 무지는 그 후에도 지속되다가 1854년이나 되어서야 영국의 의사였던 존 스노(John Snow)가 오늘날의 ‘접촉 추적’(contact tracing)의 개념을 이용해 런던의 급수 펌프가 콜레라 발발의 중심지며 사람들의 접촉을 통해 확산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한 같은 해 이태리의 의사 필리포 파치니(Filippo Pacini)는 현미경을 이용해 콜레라 바이러스를 분리해 내기도 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1794년 출간한 그의 동판화 집 ‘경험의 노래’(Songs of Experience)에 ‘병든 장미’(The Sick Rose)라는 시화(詩畫)를 수록한다. 그 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the insible worm)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 장미여, 너는 병들었구나!

보이지 않는 벌레가

으르렁거리는 폭풍 속을 밤 동안 날아,

너의 진홍빛 환희의  

침상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의 어둡고 은밀한 사랑으로 

그대의 삶을 파괴하도다.    


이 시 속의 병든 장미는 거친 남성의 욕정으로 파괴되는 한 가련한 여성의 모습에 대한 은유 일지 모른다.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신비스러운 환영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신비주의적 시는 이러한 그의 개인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시를 쓰기 얼마 전 그는 사랑하던 동생을 폐결핵으로 잃었다. 시인의 마음속에 아픔으로 남은 그 경험이 죽음과 연관된 어떤 보이지 않는 벌레의 이미지로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시의 의미는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죽음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랐던 시절의 시인에게는 그 보이지 않는 죽음의 전령이 ‘벌레’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었을지 모른다. 블레이크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의 영향을 ‘보편적인 질병과 감염’(general malady and infection)이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었다. 문학의 강력한 힘도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의 마음에 퍼지게 된다는 은유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대 피터르 브뤼헐 (Pieter Bruegel the Elder), '죽음의 승리'(1562)

문학적 은유로서 질병은 전쟁과 함께 폭풍과 연결된다. 전쟁은 폭풍처럼 몰아쳐오고 질병 역시 폭풍우가 다가오듯 거대하고 은밀하게 퍼져 나간다. 영국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폭풍을 전쟁과 질병의 이미지로 사용했다. 19세기의 영국은 전쟁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작가들은 전쟁터의 총과 대포 그리고 비명 소리를 천둥소리에 비유했다. 콜리지는 자신의 시 ‘고독 속의 공포’(Fears in Solitude)에서 영국의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침략과 천둥과 외침”이라고 묘사하였다. 당시의 의학은 나쁜 공기가 질병을 옮긴다고 믿었다. 더 이상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전쟁에 나갔던 병사들과 함대를 전염병 확산의 주원인으로 여겼다. 그렇게 전쟁과 질병은 또다시 연결된다. 콜리지는 제국주의 전쟁을 언급하며 그것을 ‘노예제와 고통을 먼 곳의 종족들에게 옮기는’ 전염병에 비유했던 것이다..       


질병에 대한 또 다른 비유도 흥미롭다. 질병을 사람을 죽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왕들로 표현한 것이다. 1792년 ‘여성 권리의 옹호’라는 페미니즘의 전설적인 선언문을 썼던 메리 울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사악하게 숨어있는 괴저병의 원천으로 ‘전제군주들’을 언급하였다. 그 글이 나온 25년 뒤 콜레라의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만화가였던 존 리치(John Leech)는 콜레라 공(公) 또는 콜레라 왕이라 부르며 전제적 제국주의를 풍자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왕들과 은밀한 전염병을 동일시한 결과였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셸리(Mary Shelley)도 전쟁과 질병을 통치자와 연결하고 있다. 전염병의 대재앙을 묘사했던 소설 ‘마지막 인간’(The Last Man, 1826)에서 메리 셸리는 전염병이 “지상에 어김없는 화살을 쏘아대었다”라고 묘사한다. 소나기처럼 쏟아붓는 화살로 전염병은 “세계의 여왕”이 된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셸리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에서의 승리를 바라기보다는 백성들을 살펴 ‘무혈의 평화’를 추구하는 군주를 이상화하였다.      


그러나 문학이 전염병을 전쟁으로 은유한 것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전쟁’의 이미지는 식상하다. 범죄, 환경오염, 식량과 자원의 부족, 기후 위기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전쟁’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유튜브나 각종 매체에서도 인류의 종말을 가상하고, 생존의 방법을 군대 식으로 보여주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전쟁에 불려 나온 군사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쟁은 그 실제에 있어서는 너무도 위협적이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하나의 은유나 비유로서는 식상한 점이 없지 않다. 그다지 생생하거나 설명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코비드’라는 세균은 가히 전쟁의 파괴력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은유의 측면에서 보면 오늘의 우리에게 그것은 전쟁보다 폭풍우에 가깝다. 집 안에 숨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본다. 보이지 않는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시대에 역병에 대한 묘사는 그 사악한 힘에 대해 무기력한 인간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기 위한 전제군주들의 야욕에 힘없는 백성들이 무릎 굻었던 역사의 비극을 나타낼 뿐이었다. 이제 우리가 직면한 세상은 무기력하게 바라볼 전쟁터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하나의 폭풍이다. 숨어서 지나가길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는 폭풍이다.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시대에 전염병에 마주쳐 속절없이 전쟁을 떠올리듯,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망연히 바라보기만 하는 폭풍의 은유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이미지이다. 폭풍처럼 거대한 코로나의 바람에 휩쓸린, 암담한 현실 속에 주저앉은 우리에게 정호승 시인의 시 ‘폭풍’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 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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