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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3. 2020

첫눈이 내리면

이정하,  네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첫눈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 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The First Snow

                      by Lee, Jeong-ha    


I just look back over and over

Not to see anybody there

But to feel that you might stand there.

Surely you are nowhere to find.     


By the time leaves fall

I have forgotten you.

Like faded photos

I have forgotten all about you.

Now that the first snow is falling,

I am unwittingly reminded of you

Looking like the softly-falling snowflakes.

Who knows why?     


I could never forget you.

But, like a lie, I am forgetting you.

Now the first snow has fallen,    

You still lies

On my empty mind

Like snow piles up.

(Translated by Choi)    


첫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세요?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겠지요. 저는 재수하던 시절의 한 친구가 떠오릅니다. 첫눈은 아니었지만 눈보라가 아주 세차던 날 그는 학원 앞 커피숍 입구에 서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후 그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기억이 아스라합니다. 아마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던 것 같아요. 그는 키가 컸고 말랐고 눈빛이 강렬했어요. 우린 밤새워 설익은 철학과 예술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소원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고 또 다른 겨울에 교육문화회관 커피숍 눈 내리는 창가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 후 많은 이야기가 있었죠. 그리고 그는 잊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내리면, 문득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눈 내리는 그날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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