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픈 꿈과 진달래꽃
소월과 예이츠, 싸뿐히 즈려밟고 가세요
W. B.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희곡작가입니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조국 아일랜드의 자연과 언어를 소중히 여겼죠. 프랑스 파리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그는 아일랜드 출신 젊은 작가들에게는 문학적 스승이자 롤 모델이었습니다. 파리로 그를 찾아온 싱(Joh Millington Synge)이라는 젊은 극작가에게 그는 "아란으로 가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란(Aran)은 아일랜드에 속한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가장 아일랜드적인 인간과 자연을 깨닫고 그것을 작품 속에 담으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후 아일랜드 연극 운동을 주도한 싱은 그 말을 듣고 아란 섬에 가서 생활한 뒤 '바다로 간 기사들'(Riders to the Sea)들이라는 단막극을 쓰게 됩니다. 어촌 마을에서 남편과 아들들 모두를 바다에 잃게 된 모리아라는 여성이 두 딸과 함께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 이래 영어로 쓴 가장 아름다운 희곡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단막극은 한국의 평론가들로부터 우리의 한의 정서가 담겨 있다고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아일랜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같은 뛰어난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였죠. 하지만 식민지인들이었던 그들은 종종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19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현대 아일랜드 문학의 선구자였던 예이츠의 시 '그는 하늘의 천을 원합니다'라는 시를 번역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시적 표현으로 인해 떠오르는 우리 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영어로 옮겨 함께 수록합니다. 아일랜드를 그린 예이츠가 그랬듯 소월이야 말로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표현을 남겨주었으니까요.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by William Butler Yeats(1865~1939)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그는 하늘의 천을 원합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내가 금빛 은빛으로 짜인
하늘의 수 놓인 천을 갖고 있다면
밤과 낮과 그 어중간의 빛으로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천을
그대의 발아래 펼치겠지요.
하지만 가난한 나는 꿈 밖에는 가진 게 없어서
그대 발아래 내 꿈을 펼치니
사뿐히 밟으세요. 내 꿈을 밟는 것이니까요.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의 발아래 꿈을 깔아놓겠다고 합니다. 제발 사뿐히 밟으라고 말합니다. 그의 꿈을 밟는 것이니까요. 평범할 수 있는 이 시어에 왜 이렇게 마음이 애잔해지는 것일까요. 그가 가난해서만은 아닙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그것을 기꺼이 바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냥 무언지 모를 그의 꿈이 슬픔처럼 느껴지는 때문입니다. 하늘의 천은 천 가지 만 가지의 빛으로 짜여 있지요. 그래서 그 화려한 실의 조화로 사랑을 감싸줍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 찬란한 빛은 시인의 간절한 꿈과 견주면 빛을 바래는 것 같습니다. 하늘의 천과 그의 가난한 꿈은 역설입니다. 그것은 풍요와 결핍,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증오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역설이 주는 긴장감은 시인의 애달픈 사랑 속에서 따뜻한 감성으로 해소됩니다. 떠나는 님의 발치에 뿌리는 진달래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달래꽃
김소월(1902~1934)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Azalea
by Kim, So-weol
When you leave
Sick of me
I will gently let you go without a word.
At Mt. Yak in Youngbyun
I will pick up an armful of azaleas
And scatter them over your path.
Step by step, on your way
Tread softly on the flowers
Placed before you.
Whenyou leave
Sick of me
I will not shed tears at all.
(Translatedby Choi)
소월 역시 자신의 꿈을 객관화한 진달래꽃을 떠나는 그님 앞에 뿌립니다. 그렇게 동서양의 두 시인은 시를 통해 사랑에 대해, 떠나는 님에 대해 애끓는 마음을 공유합니다. 발아래 깔아놓은 꿈과 간절한 사랑의 진달래꽃을 어찌 무참히 짓밟고 떠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아니 눈물 흘리는 그 마음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요. 하지만 두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버리고 떠나는 사랑에 대한 미련보다는 자신이 지켜야할 꿈과 사랑에 대한 애착이 더 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