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1934∼1965). 여류 수필가이자 시인, 번역문학가. 1960~7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많은 여성들에게 그녀는 이국적 아름다움, 사랑, 낭만,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허무와 짙은 고독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서른하나의 나이에 세상을 버린 그녀.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여 천재로 불렸던 전혜린, 그녀는 왜 성균관 대학의 교수로 임용된 지 일 년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그녀는 서울대학교 법학과 3학년 재학 중 전공을 바꾸어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뮌헨의 슈바벤, 축축한 밤안개 사이로 오렌지색 가스등이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그곳에서 전혜린은 젊음의 꿈과 낭만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사유의 순간들을 만끽하였을 것이다. 유학 시절의 사랑과 결혼, 귀국과 이혼. 결국 그녀는 일곱 살의 딸을 두고 스스로 먼 길을 떠나고 만다. 그녀가 남긴 유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는 그녀의 흘러넘치는 감성과 깊은 상념의 기록이었다.
광기처럼 불타오르는 생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그녀를 견딜 수 없는 허무의 수렁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니체의 연인이었던 독일의 여류 소설가 루 살로메를 좋아했던 전혜린은 이국적인 뮌헨의 밤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그 감상의 절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뮌헨은 그렇게 나혜석의 파리를 닮아있다. 도시의 무심한 장면들 속으로 운명처럼 찾아온 고독과 허무를 그녀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새로움에, 격렬함에 목말랐던 그녀는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그림자처럼 쫓아오는 자신의 본질과 함께 그녀는 외치고 웃으며 살고 죽는다. 모든 것이 자기로부터 비롯된다는 그녀의 자의식은 그렇게 평범하고 권태로운 삶을 거부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아와 일체화하는 그녀의 시는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는 그녀만의 외침일지 모른다. 그녀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