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은 1차 대전 이후의 척박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을 즐기자는 미국식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오늘을 즐기라’(Seize the Day)라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매일 파티가 열리고 사람들은 빠른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춤추기를 즐겼다. 피카소와 장 콕토,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활동했던 시기였고, 여성들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등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와 자유가 확대되었던 때였다. 1920년대를 미국의 근대사에서는 ‘재즈의 시대’(The Age of jazz)라고 부른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한 개성적이고 개방적인 여성들은 플래퍼(flapper)라고 불렸다. 그들은 단발머리에 무릎까지 올라온 짧은 스커트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채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당시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을 비웃고 성에 대해 더욱 대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자동차의 보급이 확대되고 여성 운전자가 늘어남으로써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가 더 쉬워졌던 것이다.
스콧 & 젤다 피츠제럴드
젤다 피츠제럴드(Zelda Fitzgerald, 1900~1948),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zby)의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의 아내. 그녀 역시 재즈 시대의 대표적인 ‘플래퍼’였다. 사실 플래퍼라는 표현에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강력한 반감과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있다. 예전에 한국 사회에서 유행했던 ‘후랏빠’라는 속어는 이 영어 표현의 일본식 발음이었다. 속칭 ‘날라리’라는 표현과 유사한 뜻으로 사용된 것이니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즈의 시대’ 플래퍼들은 그러한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보다 독립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여성에 대한 상징이었다. 자신의 산문 ‘플래퍼 예찬’에서 젤다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녀는 추파를 던지는 것이 재미있어 추파를 던졌고, 몸매가 좋았기에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을 늘 하고 싶었던 일과 의식적으로 일치시켰다.”
젤다도 그랬다.
젤다는 남편 스콧의 뮤즈로 불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과 재능을 지닌 작가였다. 장편소설 ‘왈츠는 나와 함께’(Save me the Waltz, 1932)를 출간하고, 희곡 ‘스칸달라브라’(Scandalabra, 1933)를 공연했으며, 잡지에 열 편의 단편과 산문들을 기고했다. 사후에는 미발표 단편소설 원고 8편이 발견되기도 했다. 나중에 전기 작가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녀의 다른 글들은 남편과 공저로 발표되기도 하였고 또 어떤 글들은 아예 남편의 이름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그러한 행동에 분개했다. 1920년 스콧은 젤다의 일기를 출판하자는 편집자의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일기를 자신의 작품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The Beautiful and Damned, 1922)에 끼어 넣는다. 훗날 젤다는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이라는 서평에서 남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다. "어떤 페이지에선 결혼 직후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제 옛날 일기의 일부가 보여요. 아무래도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 “ 하지만 스콧의 이 작품은 1920년대 재즈 시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아내 젤다와의 결혼 생활을 묘사한 자전적 작품이다. ‘젊고 부유하고 생기 넘치는 앤서니와 글로리아 패치 부부. 앤서니는 자산가인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을 막대한 유산만 기다리며 오랫동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아내인 글로리아와 함께 파티를 열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유산을 좀처럼 받지 못하고 화려한 결혼 생활마저 퇴색하면서 앤서니는 점차 알코올 의존증과 신경쇠약을 겪으며 무너진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이후 젤다-스콧 부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예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자전적 작품 속에 아내의 일기 일부를 인용한 스콧도 물론 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그림자로 살기에는 문학에 대한 열망이 너무도 강했다.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의 삶만을 중요시했던 남편에 대한 그녀의 불만과 반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결혼 생활은 점차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피츠제럴드와 가까운 친구였던 작가 헤밍웨이는 젤다의 그러한 성격이 스콧의 작품 활동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했다고 믿는다. 이후 헤밍웨이는 자신의 회고록에 젤다를 광기에 사로잡혀 남편의 재능을 시기하고 방해한 정신이상자로 묘사한다. 이것이 오랜동안 그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하게 했던 것이다. 특히 우디 앨런의 2011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암시된 젤다의 모습은 물질적인 추구로 시나리오 작가인 남편을 괴롭히는 속물적 여인이었다.
하지만 젤다의 예술적 재능은 뛰어났다. 스콧의 뮤즈만으로 살기에는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과 개인적 능력이 너무도 크고 넓었던 것이다. 그녀는 발레와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20대 중반에 발레를 시작하고도 4년 만에 발레단의 입단 제의를 받았으며 뉴욕에서 회화 작품전을 열기도 하였다. 그녀의 불행은 어떤 의미에서 그녀가 지닌 너무 많은 재능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젤다와 스콧의 만남 자체가 그리 순조롭지는 않았다. 1917년, 피츠제럴드는 프린스턴 대학을 중퇴하고 1차 대전에 참전하였고, ‘낭만적인 에고이스트’(Romantic Egoist)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 젤다를 만나 미래를 약속했지만, 탈고한 원고를 출간할 출판사를 찾을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군에서 제대한 스콧은 뉴욕에 있는 광고 회사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의 불투명한 미래를 이유로 젤다는 그를 떠난다. 그 후 스콧은 ‘낭만적인 에고이스트’를 개작해 ‘낙원의 이쪽’(This Side of Paradise)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1920년에 출간된 이 작품으로 스콧은 작가로서의 명성과 경제적 여유를 얻게 된다. 그러자 젤다는 다시 스콧과 만나고 결국 결혼에 이른다. 이후 두 사람은 스콧의 성공에 기대어 몇 년간 화려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1925년, 스콧은 걸작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출판하였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대본작가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젤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자전적 내용을 담은 단편과 산문들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글을 스콧이 도용하고 표절했다는 불만에 가득 차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녀는 당시에는 작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녀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전기 작가 낸시 밀퍼드(Nancy Milford)가 젤더에 관한 책으로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면서부터이다.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인 삶의 태도와 강한 자의식으로 젤다는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아이콘이 된다. 특히 남편에 의해 그녀의 문학적 재능이 훼손되었다는 주장과 믿음으로 그녀의 삶과 문학은 더욱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불행했다. 1930년에 이르러 젤다는 신경쇠약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이 시기는 남편 스콧에게도 힘든 시절이었다. 알코올 중독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던 스콧은 아내의 치료를 위해 함께 스위스로 이주하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하지만 이듬해 스콧의 부친이 사망하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후 젤다의 신경쇠약 증세는 더욱 악화된다. 실제로 그녀는 ‘아내와 엄마의 위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현병 진단을 받고, 발레와 글쓰기를 금지당하기도 한다. 당시 허리우드에서 일하던 스콧은 아내의 정신병 치료에 돈이 많이 필요하자 ‘위대한 개츠비’ 이후 9년 만에 소설 ‘밤은 부드러워’(Tender is the Night, 1934)를 발표한다. 하지만 사교계의 화려한 삶을 그린 이 소설은 대공황 이후 궁핍과 허무에 빠져있던 독자들에게 외면당한다.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스콧은 작가로서의 실패와 재정적 궁핍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1937년 다시 할리우드로 가서 MGM과 계약을 맺는다. 이 당시 스콧은 칼럼니스트였던 셰일러 그레이엄과 만나 연인관계가 된다. 그리고 1940년, 할리우드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 그는 애인 그레이엄의 집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30대 이후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젤다는 1936년 이래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있었다. 남편이 사망하던 때에는 1년 반 이상 그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병원 생활을 하며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어느 날 오랫동안 살고 있던 그 병원에 화재가 발생해, 그녀는 불 속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뛰어난 재능의 여류 작가의 허망한 말로였다. 그녀가 죽은 후 피츠제럴드 부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되살아난다. 두 사람은 대중소설이나 영화의 주제가 되었고, 학술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재즈 시대의 상징으로, 페미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젤다는 오만한 남편의 희생자로서 부각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1992년 앨라배마 주 여성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하였다.
젤다와 스콧. 두 사람의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미국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작가 스콧도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불행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젤다 역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지 못한 채 고난의 삶을 살다 갔다. 스콧의 산문 ‘금이 가다’(The Crack-Up·1936)에 쓰여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두 사람의 삶에 대한 고백처럼 들리는 이유이다.
“모든 삶이란 서서히 해체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일 테지만, 그중에서도 중대한 타격은 그 파괴력을 단숨에 발휘하지 않는다. 외부의 타격엔 내부의 또 다른 타격이 뒤따르게 되는데, 이를 자각했을 때엔 이미 늦어서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