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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16. 2021

내게도 기다리는 고래가 있습니다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Waiting for a Whale

             by Ahn, Do-hyun     


Waiting for a whale

I was there in the Jangsaengpo Sea.

Someone told me that the whale would not come back

And that she would rarely, if ever, come in sight. 

Deep in sorrow, I sat on the edge of the habor mole

And only watched the sea. 

Knowing that she would not come even after a long wait,

I was waiting. And I was waiting, 

Aware that life always makes us done up with waiting.

While waiting for a whale,

I saw the waves sucking on the nipple of the beach. 

Whenever I let out my breath,

I thought the shrugging sea might be 

None other than a Whale.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라는 아일랜드 출신 부조리 극작가의 작품에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부랑자 두 사람이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고도 씨가 올까?’라는 질문을 반복합니다. 극의 마지막에 한 소년이 등장해 ‘고도는 오늘도 오지 않을 것’을 알립니다. 이 줄거리도 없고 막연하기까지 한 작품이 교도소에 있는 남자 죄수들을 위한 위문 공연으로 선택됩니다. 이유는 여자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연출자와 배우들은 이 난해한 부조리극이 거친 죄수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했습니다. 긴장 속에 공연이 시작되었고, 놀랍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죄수들은 집중한 채 자리를 지켰습니다. 연극이 끝난 뒤 연출자는 죄수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작품 속의 고도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 죄수가 대답했죠. ”그거야 뻔하지. 사회 아니요. 우리가 기다리는 건 이 감옥 밖의 세상이니까. “     


누구나 자기만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오리라고,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죠. 그 기다림은 소망이고 기대이고 희망입니다. 그 기다림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현실이고, 꿈이고 희망이고 동시에 절망이기도 합니다. 곽진언이라는 가수의 노래 중에 ‘후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 중에 가슴에 찡하게 남겨진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지... 떠난 내 님 다시 돌아오는 것, 아쉬움뿐인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사랑하는 우리 엄마 다시 살아나는 것, 그때처럼 행복하는 것... “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으면서도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다림이 곧 인생임을 깨닫게 하는 것들이 있는 거죠. 내게도 기다리는 고래가 있습니다. 결코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고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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