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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25. 2021

그냥 가게 내버려 두세요

도종환과 김병래

삶의 가장 현명한 태도는 무엇일까? 60대의 중반을 지나면서도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삶을 어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죠.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삶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 같은 깊은 철학적 성찰을 말할 자격은 없으나 살아보니 그저 무엇을 하려 이를 깨무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도종환의 시를 보는 순간, ‘그렇지. 그랬었지.’하고 탄식하고 말지요.  


바람이 오면

             도종환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 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When the wind comes

                by Do, Jong-whan     


When the wind comes

Let it come and

Let it go.    


When yearning comes

Let it come and

Let it go.     


Suffering will come

It will stay to live

Before it goes.    


So the time will come

and go.

Let it go.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남을 미워하는 일입니다. 사람만 미운 것은 아니죠.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사는 이 세상도 미워질 때가 많습니다. 마음속에 미움을 담고 사는 것만큼 힘들고 어리석은 일은 없지만 어쩌겠습니까. 미운 척하지 않고 살기가 더 어려운 것을요. 우연히 눈에 들어온 김병래 시인의 시는 내가 미워했던 사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왔던 비뚤어진 삶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자

           김 병 래    


언제나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

뭐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자

그 사람은 그게 유일한 낙이 아니겠는가.    


하릴없이 남의 약점을 캐고

흉을 보는 사람이 있다

뭐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자

그 사람은 그게 유일한 취미가 아니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남을 욕하고

칭찬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뭐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자

그 사람은 그게 유일한 재미가 아니겠는가.    


숨어서 거짓부리를 만들어

풍선에 날리는 사람이 있다

뭐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자

그 사람은 그게 유일한 소일이 아니겠는가.    


Let them do it

           by Kim, Byung-rae    


There is someone

Who always blames others.

Let him do it without saying anything.

Isn’t that his only pleasure?     


There is someone

Who uselessly digs for and reveals others’ weaknesses.

Let him do it without saying anything.

Isn’t that his only hobby?      


There is someone who slanders anytime

Instead of praising others.

Let him do it without saying anything.

Isn’t that his only fun?     


There is someone

Who, hiding himself, flying a balloon with lies in it.

Let him do it without saying anything.

Isn’t that his only pastime?     


중국 당나라 시대의 고사 성어에 ‘타면자건(唾面自乾)’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굳이 그것을 닦아 상대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지 말고, 저절로 마를 때까지 두라는 얘기입니다. 이 경지에 오르려면 아마 성인군자가 되어야겠지만 그쯤은 견뎌낼 수 있어야 오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얘기되는 ‘존엄’(dignity)의 상실이 아니라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고 같이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품위’(decency)를 잃어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어야겠습니다. 남은 시간 봄여름 가을 겨울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죠. 아쉬울 것 없는 인생, 누구도, 무엇도 미워하지 말고 살아봐야겠습니다. 여태 한 번도 그래 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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