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Even with You by My Side I Miss You
by Ryu, Shiva
In water
There is anything but water.
In the sky
There is anything but the sky.
And in me
There is anything but me.
You in me
Who shakes me inside
Who, like the water and the sky, flows deep in me
And meets my secret dream,
Even with you by my side
I miss you.
곁에 있어도 그리운 사람. 그는 누구일까요? 세상에는 세 가지 행복이 있답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하는 것’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은 본성입니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옛 친구를 그리워하고, 돌아가신 어머님, 잃어버린 옛사랑. 그 모든 것이 우리들의 그리움입니다. 그리움과 사랑은 한 걸음 차이입니다. 사랑했던 많은 것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그리움으로 꽁꽁 쌓여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저는 담배를 물게 됩니다. 끊어야지 수없이 되뇌었는데 여전히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을 보면 제게도 여전히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시인은 내 안의 나를 그리워합니다. 철학의 근원적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고 합니다. 내 안의 나는 누구일까요?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 나를 흔들어 깨워 미지의 길로 인도하는 존재. 그리고 결국은 혼자 남겨질 때 나와 함께 하는 존재. 그것은 바로 ‘내 안의 나’ 뿐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나는 흰 구름이 떠가는 하늘 아래 홀로 걷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 아름다운 한가로움이 좋으면서도 그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죠. 그때 느꼈던 그 허황함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저는 제 속의 저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한 걸음 떨어져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만이 그리움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나’도 그리운 존재였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융(Carl Jung)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죠. ‘밖을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안을 바라보는 사람은 깨어있다.’ (Who looks outside, dreams; who looks inside, awakes.) 남만 바라보지 말고 ‘내 안의 나’를 자주 불러내야겠습니다, 언제까지 꿈만 꾸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