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Feb 04. 2021

바람은 어디서 불어올까요?

윤동주, 바람이 불어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늘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수많은 노래와 시들이 바람을 얘기했죠. 김광석의 노래에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리”라는 구절이 있어요. 바람이 시작되는 곳, 그곳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혹시 그곳을 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스치는 바람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Rossetti)는 나뭇잎의 떨림에서 바람을 느꼈죠.  


누가 바람을 본 적이 있나요?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뭇잎들이 떨리면 

바람은 지나고 있는 것이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이렇게 바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연들을 하늘 높이 날리고

하늘에 새들을 띄우는 당신을 보았소. 

모든 곳에서 당신이 지나는 소리를 들었지. 

풀밭을 스치는 여인의 치맛자락 소리처럼.    


바람 소리는 천만 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봄철의 속살 같이 은근하고 포근한 바람, 여름의 무더위를 적시는 물줄기 같은 바람, 가을의 적막하고 가슴 시린 바람, 휘몰아치는 겨울의 칼바람. 그 모든 바람은 계절에게 이름을 주고 손님처럼 우리 곁에 왔다가 무심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죠. 에밀리 디킨스(Emily Dickinson)는 그 바람의 방문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바람이 피곤에 지친 손님처럼 문을 두드렸어요. 

“들어오세요.” 마치 주인처럼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죠. 그리고 그가 들어왔어요.

내 사는 곳 그 안으로.     


20세기 초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운명을 한탄했던 젊은 윤동주 시인도 그 바람을 맞으며 무수한 생각에 잠겼겠죠. 그 시절, 그 망명의 땅을 떠돌며 청년 동주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불어오는 바람에 무엇을 담아 외쳤을까요? 시절과 상관없이 바람이 불고, 강물은 흐르지만 그는 반석 위에 두 발을 딛고 서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위대한 시인의 시를 영문으로 옮겨보는 것은 제 큰 영광입니다.           

바람이 불어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러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The Wind is Blowing

                 by Yoon, Dong-ju     


From where does the wind come,

And then where does it go?     


While the wind blows, 

There is no reason for my agony.    


Is there really no reason for my agony?     


I have never loved only one woman,

Never been sad over the times.     


While the wind blows on and on, 

My feet are on a rock.    


While the river flows on and on

My feet are on the hill.          

매거진의 이전글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