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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Feb 11. 2021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박인환,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박인환 시

          이진섭 곡

          박인희 노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As Years Go by

             by Park, In-whan             


Though I have now forgotten her name,

I still have her eyes and lips in my heart.


When the wind blows and the rain falls,

I shall never forget the night

In the shadow of a street lamp out of the window


Love is gone but old days still remain.

By the summer lake and in the autumn park

Leaves fall on the bench

And turn into earth.

Though, covered with leaves,

Our love goes away,


It is still in my broken heart.     


젊은 시절 즐겨 듣고 불렀던 ‘세월이 가면’은 가버린 사랑에 대한 추억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지금 저의 옛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지요. 통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렀던 1970년대 통기타 가수 박인희는 미국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몇 년 전 KBS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에 전설로 나와 후배 가수들이 부르는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던 그녀는 들의 놀라운 가창력과 세련된 편곡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죠. 하긴 기타 반주 하나에 속삭이듯 불렀던 그녀의 노래들이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열창으로 바뀌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빅밴드에 맞춘 그 노래도 멋있었지만 제게는 아직도 그녀의 외롭고 슬픈 목소리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한국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1956년, 명동의 ‘경상도 집’이라는 작은 주점에 젊은 예술가 몇몇이 모여 있었습니다. 시인 박인환,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그리고 가수 나애심이 그들이었죠. 나애심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 등의 노래를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렀던 여가수였습니다. 그녀는 9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자 그녀는 ‘부를 노래가 없다.’며 고사했다고 합니다. 그때 시인 박인환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노랫말이었어요. 함께 있던 이진섭이 즉석에서 그 가사에 맞추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극작가였지만 샹송을 좋아했고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노래가 탄생했죠. 그 옛날 명동의 낭만이 만들어낸 이 노래를 20년 뒤 박인희가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그녀는 박인환의 또 다른 시 ‘목마와 숙녀’를 톡송(talk song)으로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시인 박인환은 이 노랫말을 만든 그해, 서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천재 시인이었습니다.             


이별에 몸부림치는 젊은 시인 박인환의 애달픈 시 하나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술보다 독한 눈물

               박인환     


눈물처럼 뚝뚝

낙엽 지는 밤이면

당신의 그림자를 밟고 넘어진

외로운 내 마음을 잡아 보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렇게 이별을 견뎠습니다    


맺지 못할 이 이별

또한 운명이라며

다시는 울지 말자 다짐했지만    


맨 정신으론 잊지 못해

술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버린 당신이 뭘 알아

밤마다 내가 마시는 건

술이 아니라    

술보다 더 독한 눈물이 이였다는 것과


결국 내가 취해 쓰러진 건    

죽음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Tears Bitter than Liquor

                  by Park, In-whan     


Like tears,

Leaves were falling one by one.

That night I tried to soothe my lonely heart

Stumbling down under your shadow.    


Faltering

Here and there

I managed to bear our parting.     


My lost love,

Our parting seemed to be a destiny

So I resolved not to cry.     


But I could not forget you in sanity

So that I have learned to drink.     


You, who abandoned love, never knew

What I drank every night

Was not wine     

But tears bitterer than liquor,


And what made me get drunk and collapse    

Was the yearning

Deeper than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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