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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30. 2021

과묵한 사람이 된 이유

인형과 실

옛날 어느 왕국에 현명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왕자에게 세 개의 인형을 주었죠. 다소 의아해진 왕자가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여자 아이도 아닌데 왜 인형을 주신 거죠?”     


“이것은 미래의 왕께 드리는 제 선물입니다.” 신하가 말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인형마다 귀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하는 왕자에게 가는 끈을 하나 주었습니다.     

“이제 이 끈을 그 구멍에 넣어보세요.”     


호기심이 생긴 왕자는 신하의 말대로 끈을 인형의 귀에 있는 구멍에 넣었습니다. 끈은 구멍을 통과해 다른 귀로 빠져나왔습니다.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왕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다른 귀로 흘려보냅니다. 아무것도 그의 마음에 남지를 않지요. 다음 인형에도 끈을 넣어보세요.”    


두 번째에서는 끈이 인형의 입으로 나왔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이죠. 그는 왕자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다른 모든 사람에게 말을 옮깁니다. 비밀이란 없지요. 이제 마지막 인형에도 똑같이 해보세요.”    


세 번째 인형에서 끈은 어느 곳으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들을 말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꽁꽁 담아둘 뿐입니다.”     


왕자가 묻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인가요?”    


신하는 대답 대신 인형 하나를 다시 주었습니다.     

“끈을 넣어보세요.”     


왕자가 끈을 넣자 첫째 인형처럼 귀로 나왔습니다.     


“다시 해보세요.”     


두 번째는 입으로 나왔고 세 번째는 어느 곳으로도 실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하가 왕자에게 말합니다.     


“그 인형과 같은 사람이 가장 훌륭하죠. 언제 듣지 말아야 하고, 언제 비밀을 지켜야 하며 언제 입을 열어 말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입니다.”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도 내 생각에 몰두하곤 했죠. 그랬더니 점점 내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때는 무슨 얘기를 들으면 흥분해서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죠. 그 말을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 입을 통해 퍼뜨리려는 의도였다는 것을요. 이후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긴 했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너무 과묵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세 가지 유형을 다 거치고 났지만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흘려듣고, 언제 얘기하고, 왜 가슴에만 담아두어야 하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과묵한 사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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