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의 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pr 02. 2021

신성모독

감사기도 

                     작자미상     


주님, 저는 출세를 위해 당신께 힘을 구했으나 

당신은 순종을 배우도록 저에게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위대한 일을 하고자 건강을 원했으나 

당신은 그보다 선한 일을 하도록 저에게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행복을 위해 부귀를 청했으나 

당신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저에게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만민으로부터 우러러 존경받는 자가 되려 명예를 구했으나 

당신은 저를 비참하게 하시어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삶의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원했으나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삶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비록 제가 당신께 기도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주시었으니 

주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A Prayer of Thanks 

                   Anonymous    


My Lord, I prayed for power to get ahead in the world

But you gave me feebleness to let me learn obedience.     


My Lord, I wanted health to do great things

But you gave me illness to let me do good things.     


My Lord, I asked for riches to be happy

But you gave me poverty to let me be wise.     


My Lord, I wished for honor to gain respect from all people

You made me miserable to let me see nobody but you.      


My Lord, I sought to possess everything for pleasure

But you led me to such a life as to give pleasure to everybody.      


My Lord, I was given nothing I prayed to you 

But you gave me everything you wanted from me.

Thanks, my Lord.     


힘, 건강, 부귀, 명예, 삶의 즐거움. 누구나 갈구하는 그것과는 달리 우리의 삶은 나약함과 질병, 가난과 치욕 그리고 삶의 고통으로 흔들리기 일쑤입니다. 왜 내게는 남들이 누리는 그것들이 언제나 신기루처럼 손에 닿지 못하는 것일까요?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남보다 악하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고 모진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요? 언제까지 남의 풍요로움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까. 나약한 몰골이어야 순종할 수 있고 병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선해질 수 있는 건가요? 어찌 가난해야 현명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비참함에 빠져야 당신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 땅 위에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했던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나의 기쁨은 그렇게 희생되어도 괜찮은 것입니까? 바라는 것은 하나도 받지 못한 채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것에만 만족해야 합니까? 그리고 이 모든 황당한 불공평에 감사를 해야 한다고요? 왜요?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개관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전능하지 않다./ 신이 전능하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인간의 역사를 증오와 배신의 유혈 낭자한 전쟁터로 두는 것일까? 추하고 잔혹한 인류의 역사 앞에 이 위대한 역사학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선하고 무고한 인간들이 소멸하고 거친 악인들이 번창하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까? 신의 뜻이 있다면 그 뜻은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 아메리카의 비극을 보십시오. 풍요의 나라라는 미국의 국경을 세 살, 네 살 먹은 남미의 아이들이 왜 건너와야 하는 겁니까? 뉴스 화면에 보이는 저 아이들은 저쪽과 이쪽을 가르는 저 높은 담벼락에서 왜 던져져야 합니까? 강가에 버려진 갓난쟁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겁니까? 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요? 성직자의 제복을 두르고 위선과 기만을 일삼는 저 무리들은 누구의 뜻입니까? 언젠가는 알게 되기나 할까요? 권력에 대한 탐심이 얼마나 크기에 맨 손으로 거리에 나선 미얀마의 민중들은 저 잔혹한 총탄과 포탄의 희생물이 되어야 합니까?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까? 제가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까? ‘지옥에는 악마가 없다. 이 땅 위에 있다.’ 이 땅의 악마들은 보이지 않습니까? 그들의 만행을 방치하는 당신의 뜻에 감사해야 합니까? 무조건 믿어야 하는 도그마를 무기 삼아 선량하고 무지한 군중들을 언제든 순명(順命)의 길로 이끄는 것이 진실로 옳은 것입니까?     


믿고 싶습니다. 따르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한 조각의 기적이라도 제발 이 땅 위에서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아직도 믿음이 약하고, 신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무지몽매한 인간에게 한 줄기 희망이라도 주시길. 누군가가 쓴 저 시를 읽고 절로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하소서. 처절하게 버려지는 인류의 태반을 긍휼히 여기소서. 당신께서 손 내미시지 않는다면 이 불쌍한 족속들은 무엇에 기대 살아야 합니까? 그래도 뜻이 있으시겠죠. 작은 믿음이라도 회복된다면 속죄하고 다시 감사의 기도를 올릴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