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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13. 2021

당신은 그이의 마음을 아나요?

아테네의 타이몬

20년을 함께 산 어떤 부부에 대한 우스개를 하나 소개할까요?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아내는 남편이 침대에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가운을 걸치고 남편을 찾아 방을 나왔죠. 그는 부엌의 식탁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놀라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내의 물음에 남편은 그저 천정만 올려다보고 이따금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재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20년 전 우리가 데이트하던 때 생각 나?”  

“당연히 생각나죠.”     

“차 뒷자리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장인어른에게 들켰던 것도?”

“그럼요.”     

“그때 장인어른이 사냥총을 들고 나와서 내 코앞에 디밀고 말하셨지. ‘내 딸하고 결혼을 하든지, 아니면 감방에서 20년쯤 썩든지...’”    


아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왜요?”     


남편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오늘이 내가 출소하는 날이거든.”  (웃음)   


남편에게는 20년의 결혼 생활보다는 차라리 감방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았던 모양입니다. 그랬다면 ‘형기를 다 치르고 이제 자유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에게 결혼은 ‘무기징역’이었던 겁니다. 여러분! 그저 우스개입니다! 그런데 자꾸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네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살아가는 걸까요?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을까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몰랐던 마음을 알게 되면 때론 실망하고, 혹은 분노하고 심지어 절망하기도 하지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는 착각, 그것이 삶의 진실을 빼앗고, 서로를 미워하고, 결국은 홀로 남겨지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셰익스피어의 ‘아테네의 타이몬’이라는 작품 속 주인공 타이몬은 아주 부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으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빚을 진 친구에게는 대신 빚을 갚아주기도 했고, 가난한 친구들에게는 다시 받을 생각 없이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많은 돈일 때는 다른 부자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서슴없이 어려운 친구를 도왔죠. 그리고 매일처럼 그의 저택에서 파티를 열어 손님들을 배불리 먹게 했습니다. 마침내 그 많던 재산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에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타이몬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도왔던 친구들이 이번에는 자신을 도와주리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의 사정을 알게 된 친구들은 하나 같이 구실을 들어 그의 어려움을 외면했습니다. 실망과 분노로 절망에 빠진 그는 모든 인간을 혐오하며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치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땅 속에 묻힌 엄청난 금덩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보물을 두고도 그는 결코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죠.    


이것이 뭐지?

금인가? 황색의 휘황찬란한 귀중한 황금?...

이것만 있으면 검은 것도 희게, 추한 것도 아름답게,

악한 것도 착하게, 천한 것도 귀하게, 늙은이도 젊게, 겁쟁이도 용감하게 만들지.

하, 신들이여 이것이 왜? 이게 대체 뭔가?

이 황금으로 제관이든 하인이든 모두 다 당신 곁에서 끌어갈 수 있으며

건장한 사내의 머리맡에서 베개를 빼가기도 하니.

이 황색의 노예...       (4막 3장)    


* 이 대사는 칼 마르크스가 자신의 글에 인용해 유명해진 구절입니다.     


그는 그 척박한 숲 속에서 숨을 거두지만 인간에 대한 증오는 결코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타이몬을 동정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모르느냐고, 그렇게 인간을 모르느냐고. 하지만 우리 중에 누가 세상을, 인간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실망하고 절망에 빠져 타이몬처럼 증오와 복수심에 가득 찬 채 세상을 떠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죠. 그러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잘났는데, 네게 이만큼 해주었는데, 이 정도면 남편으로, 아내로, 자식으로 할 만큼 했는데... 그러니 남들도 나를 좋아하고, 인정하고, 나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요? 당신이 무심코 던진 말, 이기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한 못난 행동들, 그런 것들이 상대의 마음에 마치 비수처럼 꽂혀 여전히 상처 입고 아파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나요? 당신뿐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 삶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겠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진정성 없는 말로 모면하려 들지 말고, 진심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을 위로해야겠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나의 마음을 알아줄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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