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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15. 2021

노래와 시

하덕규, '가시나무'

가시나무 

         하덕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A Thorn Tree

           by Ha, Deok-kyu    


As there are so many I-s in me

You can find no place to rest.

With false desires inside of me,

You have no place to make yourself at home.    


The irresistible darkness in me 

Deprives you of the place to rest.

The indomitable grief in me 

Seems like a wood of thorns.     


When the wind blows, 

The dried branches get raveled to cry.

Exhausted, young birds come in to seek a refugee,

But, pricked by a thorn, they fly away.     


When the wind blew, lonely and painful, 

I used to sing sad songs day after day.

As there are so many I-s in me

You can find no place to rest.     


20여 년 전 술 취한 한 시인이 이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처음 듣는 노래였습니다.  


“그게 무슨 노래요?” 

“요즘 젊은 친구가 부르던데 가사가 좋아 몇 번 듣다 보니 따라 부르게 되었지.” 

“시인이 가사가 좋다니 궁금하구먼.” 

“내 시는 시도 아니야.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도 없으니 말이야.”     


나는 시는 부르는 게 아니라 낭송하는 거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 하는 말이 시에 음조가 붙으면 노래가 되는 것이니 다를 게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때는 서로 간에 거나해서 내가 외우고 있던 영시 하나를 읊조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 노래의 가사를 곡조를 빼고 들려주더군요. 그것은 분명 한 편의 시였습니다. 한동안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 당신 시도 노래야. 시가 노래고, 노래가 시지.”          


이듬해 가을 그 친구는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무덤을 덮은 흙을 밟으며 나는 그가 지은 아주 짧은 시를 노래처럼 흥얼거렸습니다.     


가자 가자 함께 가자

꽃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가자

구름처럼, 강물처럼 흘러서 가자. 

언젠가 다시 돌아오는 날 

비 되어 마른땅 적시면

모른 척 우리도 흙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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