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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05. 2021

하늘의 눈

정호승, '별들은 따뜻하다'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 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Stars Are Warm

           by Chung, Ho-seung    


The sky has its eyes.

Nothing to fear. 

Walking along the snow-covered barley field

In the dark winter

I find the stars warm

Rising to my sky of poverty

When night comes without daybreak.        


As for me

The time of truth is already late.

Things that I call forgiving are all lies

But, walking along the early-morning street

Through which the north wind has passed

I find the stars warm 

Rising to my sky of death 

When night comes without daybreak.      


시는 시인의 펜을 벗어나는 순간 이미 시인의 것이 아니다. 위의 시를 읽으며 엘리엇의 ‘황무지’ 속에 나오는 구절, ‘하찮은 생명에게 마른 뿌리라도 먹일 수 있었던 겨울이 따뜻했다’라는 역설적 표현을 떠올렸다. 가난의 하늘,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이 따뜻하다니! 시인의 마음속 생각이 무엇이었던 간에 나는 그 잔인한 따뜻함에 전율한다. 오래 전에만 볼 수 있었던 그 수많은 별들은 오염된 하늘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지만 마음속의 별들은 여전히 어두운 겨울을 뚫고 빛을 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별들이 암흑 속에 우리를 인도하는 하늘의 눈(眼)이다. 그래서 우린 여전히 살아남아 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지. 눈 덮인 보리밭, 북풍 몰아치는 새벽길을 따라 두려움 없이 길을 가는 것은 별들이 쏟아내는 따뜻한 열기 때문이리라. 진실은 사라진지 오래고, 용서는 거짓이었다. 하지만 새벽 없이 맞이한 밤이 오면, 그 별들이 다시 떠올라 세상을 비춘다. 엘리엇의 시구 ‘언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는’ 잔인한 4월처럼, 동 트길 기다리지 못한 밤과 그 밤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이 우리를 일으킨다. 그리고 별들은 여전히 따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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