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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31. 2021

법과 양심


다음 이야기는 미국 법과학 학회(AAFS) 회장 돈 하퍼 밀즈 박사(Dr. Don Harper Mills)가 1994년 학회 연례 시상식 만찬에서 한 실제 이야기로 AP통신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1994년 3월 23일, 검시관은 로널드 오퍼스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마치고 머리에 총알이 관통해 숨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실 오퍼스는 그날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10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유서에는 자신의 절망감을 나타내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몸을 던져 건물 9층을 지나는 순간 창문을 뚫고 날아오는 총탄에 맞아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총을 발사한 사람도 그리고 죽은 오퍼스도 빌딩 청소부들을 위해 설치한 안전망이 8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쨌든 느닷없이 날아온 총알에 맞지 않았다면 오퍼스의 자살 시도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안전망 위에 떨어져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테니... 


총탄이 발사된 9층의 방에는 한 노인과 그의 아내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거친 말다툼 중이었고, 노인은 권총으로 아내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아내를 향해 총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탄이 빗나가 옥상에서 떨어지고 있던 오퍼스에게 명중하고 말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A’를 죽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B’를 죽이게 됐다면, 의도와는 달랐다 하더라도 그는 명백히 ‘B’에 대한 살인범이다. 그럼에도 살인죄로 기소된 노인과 그의 아내는 완강하게 주장하기를, 자신들은 그 총이 장전되어있지 않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노인은 장전되지 않은 권총으로 아내를 겁주는 것은 자신의 오랜 습관이라고 주장했다. 아내를 살해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의 주장대로 라고 가정한다면 오퍼스의 죽음은 사고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수사는 계속되었고 한 목격자가 등장해 두 부부의 아들이 총에 탄환을 장전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던 재정적 지원을 중단하자, 평소 아버지의 성향을 알았던 그는 아버지가 총을 발사해 어머니를 살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탄환을 장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머니의 살해를 의도했던 아들은 자신이 실제로 총을 발사하지는 않았더라도 이 살인 사건에 있어 유죄임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조사 결과 죽은 로널드 오퍼스가 바로 두 노부부의 아들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살해를 획책했으나 자신의 도가 번번히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에 몹시 실망하고 있었고, 결국 돈에 쪼들리던  그는 3월 23일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자신이 장전한 총알이 자신에게 발사될 것을. 폐륜아 로널드 오퍼스는 결국 자기 자신을 살해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검시관은 사건을 자살로 종결하였다.    


운명은 참 묘한 순간 우리에게 다가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습니다. 어머니를 죽이려던 아들의 간교한 계획, 걸핏하면 총으로 아내를 위협하던 폭력적인 남편, 그리고 자식의 자살 시도와 빗나간 총탄. 그리고 그 총탄에 맞은 아들의 죽음. 모든 것이 불편한 현실의 과정이지만 우연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한 순간의 상황이 참으로 극적입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것이 법의 문제입니다. 이 경우 순전히 인과의 과정을 통해 내린 결론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방법으로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사악했던 의도와 그것의 결과로 벌어진 죽음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이루어진 것을 법은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법이라는 제도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때 생기는 한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해 전 월마트의 한 직원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로 하여금 법적 결론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월마트 내의 직영 사진관에 근무하던 한 직원은 어느 날  고객이 맡긴 필름을 현상하던 중에 사진 속에 범죄의 현장이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고객은 범죄 혐의로 체포되었죠. 그런데 묘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월마트가 그 사진관 직원을 고객에 대한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시민으로서의 고발 의무와 고객의 비밀 유지라는 가치가 충돌하자  법 후자에  손을 들어준 셈이죠.  하지만 그 판결에 기꺼이 공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산악지대에 추락해 생존한 사람들이 구조되기 이전까지 이미 사망한 사람들의 사체를 식량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도덕을 떠나 법적인 측면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에서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 법은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기도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계약에 의해 빚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를 요구하지만 법의 정의는 자비의 정신에 의해 무너지고 도리어 샤일록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지켜져야 한다. “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는 법언(法言)들은 상황에 따라 허언(虛言)이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자고 일어나면 신문에, 방송에, 유튜브에 법과 법의 적용에 대한 논란이 벌어집니다. 어차피 법은 인간의 발명품이니 완전할 수 없는 노릇이겠죠. 그래서 판사는 법과 양심에 의해 판결한다고 합니다. 법의  선택이 애매할 때  판단은 결국 양심에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 역시 옳고 그름의 구분이 모호할 때 우리의 양심과 믿음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양심과 믿음은  공정한 법의 적용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영국 소설가 조셉 콘라드의 다음과 같은 말은 정의와 공정의 올바른 잣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우리가 배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양심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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