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의 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Jun 02. 2021

빈 배에 부딪힌 분노

스님 한 분이 홀로 명상에 잠기기 위해 절을 떠나 호숫가로 나갔습니다. 작은 나룻배를 저어 잔잔한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러 배를 세우고 스님은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스님은 갑자기 다른 배가 자신의 배에 와서 부딪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을 감은 채, 스님은 마음속에서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뜰 무렵에는 자신의 명상을 방해한 뱃사공에게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자 스님은 자신의 배에 부딪힌 배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강가에 매어놓은 배 한 척이 줄이 풀려 떠다니다가 부딪히게 된 모양입니다. 그 순간 스님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분노의 감정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저 바깥의 무언가가 가볍게 부딪히기만 하면 분노는 언제든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이후로 스님은 누군가 그를 화나게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저 빈 배에 불과하다. 분노는 내 안에 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그만 일에도 쉽게 상처 받고, 터무니없이 성을 내기도 합니다. 내 속의 분노는 그저 작은 자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언제든 튀어나오고 싶어서 말입니다. 기억해야겠습니다. 분노는 언제나 내 안에 있습니다. 빈 배처럼 의미 없는 부딪힘에도 늘 반응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감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법과 양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