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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03. 2021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다

오규원, '한 잎의 여자'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의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A Leaf of a Woman

            by O, Kyu-won     


I loved a woman,

A little woman like a leaf of an ash tree.

I loved that leaf of a woman.


A fluff of that one leaf from the ash tree,

The innocence of that leaf,

The soul of that leaf,

The eyes of that leaf,

And the chastity and freedom of that one leaf,

Barely visible in the blowing wind.  

I loved them all.     


Really I loved a woman.

A woman who has only womanliness,

A woman who has nothing but womanliness,

A woman like tears,

A woman like sorrow,

A woman like an idiot,

A woman like a poem,

A woman whom no one can possess forever

So, an unhappy woman.     


But a woman whom I alone can have,

A sad woman like the shadow of an ash tree.     


가지에 걸린 작은 이파리 같은 여자. 그 잎 새에 수줍게 흔들리는 보송한 솜털 같은 여자. 그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나뭇가지만을 붙잡고 있는 작은 이파리와 사랑에 빠졌던 시인은 아마도 물푸레나무였던 모양입니다. 순수한 시선으로 두려운 듯 파닥이는 영혼, 나무만을 의지하는 순결함 속에 그 외롭기만 자유에 매여 있던 그녀를 그저 사랑할 뿐, 달리 무슨 수가 있었겠습니까?     


진정 여자 같은 여자. 애너벨리처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던 여자. 눈물 속에서도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했던 여자. 하지만 그 한 잎 같던 여자는 나무만의 것이었습니다. 숲 속의 그 어느 것도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렇게 여자는 다가설 수 없는 나무에 매달려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행했고 슬펐지요. 그림자처럼 영원히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그 작은 잎사귀는 언젠가 땅에 떨어지고 결국 한 편의 시가 될 겁니다. 하지만 나무는 그저 지켜만 보겠죠. 나무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시의 연은 영역을 위해 필자가 임의로 바꾸었습니다. 몇 개의 한자는 우리말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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